팝 음악사에서 비틀스만큼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상품도 없을 것이다. 최근 출간된 네 권짜리 세트 더 비틀스 솔로(시그마북스 발행)가 단적인 예다. ‘최초 공개’라는 수식어를 어디에도 달고 있지 않은 이 책은 비틀스 멤버 4명이 밴드 해체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개괄적으로 살피는 약식 전기다. 네 권 모두 96쪽 분량에 큼지막한 사진 위주로 구성돼 있어서 이들에 대한 꼼꼼한 전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래서 원제에도 글보다 사진 위주라는 걸 강조하듯 ‘삽화를 넣은 연대기’(The illustrated chronicle)라고 적혀 있다.
처음 공개하는 사실이나 사진이 담긴 게 아니라 열혈 팬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지만 한 길을 걷던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네 갈래 길에서 음악적으로 어떤 성과를 내고 그들의 사생활이 어땠는지 궁금한 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부분이 적지 않다. 영국 유명 음악전문지 모조 편집자 출신의 팝 전문 저널리스트가 썼다.
1970년 비틀스가 해체하기까지 네 멤버가 함께했던 건 8년뿐이었지만 비틀스의 일원으로 보냈던 시간은 이들의 이후 생애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네 권의 책은 이들이 비틀스라는 후광을 안고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밴드를 가장 먼저 탈퇴한 존은 아내 오노 요코와 괴이한 앨범을 내며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늘 ‘넘버 3’에 머물던 조지는 동료들 중 가장 먼저 성공적인 앨범을 발표했다. 독재자라는 오명을 썼던 폴은 뜻밖에도 지지부진한 출발을 보였다. 맏형으로서 밴드 안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던 링고는 영화배우로 변신했다.
해체 직후 이들 모두를 괴롭힌 건 끊임 없는 소송과 상습적인 약물 복용이었다. 폴은 매니지먼트 문제 때문에 세 멤버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조지는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자선 공연과 기나긴 저작권 소송의 후유증으로 창작력을 잃어버렸다. 링고의 아내와 외도를 저질렀던 조지가 자신의 아내를 친구 에릭 클랩튼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네 멤버는 각기 다른 인생의 터널을 지나면서도 우정의 균열과 회복, 실패한 결혼과 재혼이라는 공통의 곡절을 겪었다.
네 멤버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면서도 누구 하나 비틀스를 벗어난 삶을 살지 못했다. 솔로 가수로서 비틀스 시절의 영광을 넘어선 이도 없었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44년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상세히 기술하려면 최소한 수백 쪽의 지면이 필요할 터. 네 명의 삶을 압축해 놓은 이 책의 여백을 채우는 건 200여장의 사진이다. 내밀한 사생활이 담긴 사진이 아니라 음악 활동 중 찍힌 것이 대다수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만으로도 이들이 삶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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