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나와 다를 활용하여,가의 타모스 왕이 지닌 문자에 관한 견해를 평가하시오.(600자ㆍ40점)
[제시문 가]
이집트의 나우크라티스라는 도시에 테우트라는 신이 살고 있었다. 이 신은 인간에게 유용한 여러 가지를 발명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내세운 것은 문자였다. 테우트는 으레 하던 대로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타모스 왕에게 가서, 문자를 널리 쓰이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말했다.
“오, 위대한 왕이여, 이 발명품은 이집트인들을 더 지혜롭게, 또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이것은 기억과 지혜의 묘약입니다.”
그러자 타모스 왕이 말했다.
“재주 많은 테우트 신이여, 우리 중의 한쪽은 유용한 발명을 하고 또 한쪽은 그 발명이 인간에게 이익이 될까 손해가 될까를 판단해야 하는 형편에 있습니다. 당신은 문자의 아버지로서 그것을 편애한 나머지 문자가 참으로 가지고 올 결과와는 반대되는 효과를 앞세워 나를 설득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문자가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을 배우는 사람의 망각을 부추길 뿐입니다. 그것을 배우면, 문자에만 의존하여 기억을 소홀히 하게 되고, 자신의 내적 능력에 의해 기억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부호에 의해서만 기억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발명한 것은 기억의 약이 아니라 회상의 약입니다.
또 당신은 그 발명품이 지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배우는 사람은 지혜의 실재가 아닌 외양을 가지게 될 뿐입니다. 그 발명품 때문에 사람들은 배움이 없이도 여러 가지를 주워듣게 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들은 가장 곤란한 상대가 될 것입니다.”
[제시문 나]
정보와 지식은 모두 앎(知)과 관련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상적 수준에서는 같은 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체계’나 ‘구조’, ‘맥락’의 확보 여부를 기준으로 보면, 이 두 용어 간에는 현저한 개념적 차이가 있다. 지식은 어떠한 형태로건 체계성이나 구조성을 갖는다. 예컨대 어느 학생이 나무에 대해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토양이나 수분, 태양, 식물 등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전체적인 체계나 구조와의 관계 속에서 나무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은 또한 맥락성을 가진다. 단편적인 지식을 나타내는 개별적인 문장이나 용어의 의미는 전체적인 사건과 현상의 맥락 내에서만 확보될 뿐 아니라,그것이 어떠한 맥락에서 파악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가령 ‘빛’이란 용어는 물리학적 맥락, 성경과 관련된 종교적 맥락, 그리고 회화 작품과 관련된 예술적 맥락에서 제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체계 혹은 구조, 맥락으로부터 분리되어 떠돌아다니는 분절적이고 단편적인 것이 바로 정보이다. 어떤 정보를 그 체계나 구조, 맥락과 더불어 자신의 의식 속으로 수용하고, 기존의 지식 체계 속에 통합시킬 때, 그 정보는 비로소 지식으로서의 자격을 갖는다.
정보가 지식으로 질적 상승을 하는 데에는 정확한 회상과 반복적 숙고, 그리고 내면적 성찰을 위한 지속적ㆍ인지적 노력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바로 언어인데,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음성 언어로는 한계가 있다. 문자 언어가 인류사적으로 빛나는 가치를 가지는 까닭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제시문 다]
현대 사회의 한 특징으로 권위의 해체 혹은 추락을 들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우선 작가 혹은 저자의 절대적 권위가 해체되는 것이다. 저자를 뜻하는 ‘author’에 접사가 붙어 만들어진 ‘authority’가 권위 혹은 권력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데서 알 수 있듯이,근대적인 문자 문화에서는 작가 혹은 저자가 상당한 독점적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문자로 글을 써서 공적인 소통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소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는 독자인 동시에 글을 쓰는 저자로서 자발적이고도 자유롭게 사회적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저자의 독점적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 무수한 저자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과 위인의 어록, 그리고 집단적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이나 격언 등의 권위에 대해서도 도전한다. 널리 진리나 진실로 인정받는 관념을 비틀고 인터넷 등을 통해 이를 공유하는 일도 여기에 해당된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를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할 필요는 없다’로 비트는 것이 그 사례이다.
이러한 자발적이고도 자유로운 글쓰기, 그리고 이를 활발하게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은, 근대적인 문자 문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는 개방성과 포용성이라는 디지털 매체의 매력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시답안]
제시문 (가)의 타모스 왕은 문자가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문자는 외적인 부호로써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기억하기보다는 문자에 의존하게 만든다. 그리고 문자를 사용하게 됨에 따라 주변의 것들을 주워듣고 자신이 지혜롭다고 착각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제시문 (나)를 보면, 문자가 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됨을 알 수 있다. 지식은 정보를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그 정보를 둘러싼 체계와 구조를 인지하여 통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면적 성찰을 통한 지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문자이다. 따라서 문자는 지혜의 실재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제시문 (가)의 견해가 타당치 않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제시문 (다)는 문자가 대다수 사람들에게 쓰이게 되어,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사회적 소통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한다. 이로써 개인들은 널리 진리,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비틀며 왜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문자를 통해 개인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지만 진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생각만을 펼침을 말한다. 제시문 (가)처럼 스스로 지혜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됨을 뜻하며 언어가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일면을 볼 수 있다. 손준석ㆍ풀무농업고교 졸업생
[문제분석과 답안 총평]
2014학년도 한양대학교는 인문계열 응시생이 많은 관계로 오전 오후로 나눠 시험을 치렀다. 이번 해설은 오후에 치른 논술고사에 대한 문제 풀이다.
문제는 전형적인 평가하기의 유형이다. 작성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의 타모스 왕이 지닌 문자에 관한 견해를 정리 및 작성한 후 (나)와 (다)에 나타난 각각의 주장과 근거를 작성한 후 그것을 활용하여 타모스 왕의 견해에 대해서 타당성을 평가하면 된다.
그럼 먼저 제시문의 내용을 살펴 보자. 제시문 (가)에서는 타모스 왕이 문자가 가지는 부정적인 속성을 주장한다. 문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첫 번째 이유는 문자는 기록이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기보다는 회상하려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기억력을 감퇴시킨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문자가 사람들에게 실제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사회적 손해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은 문자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주장과 근거에 대해서 평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제시문의 문자에 대한 입장 및 주장과 근거를 살펴 봐야 한다. 먼저 제시문 (나)에서는 정보와 지식의 구분을 언급한다. 정보가 질적으로 수준을 높여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과 근거를 내세운다. 언어 중에서 문자가 단편적이고 분절적으로 존재하는 정보를 반복적인 숙고를 통해 개인의 지식체계에 통합시킨다고 본다. 이는 오히려 인간의 지식 획득 가능성을 높이고 문자를 통해 정확하고 반복적인 회상이 가능하게 되면서 문자는 개인의 사고력 향상을 돕고, 음성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가)의 타모스 왕의 문자에 대한 견해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문자 기능은 오히려 기억을 돕고 참된 지식의 파악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즉, 문자를 통해 알고자 하는 대상의 체계와 구조를 세우고 맥락을 잘 파악한다면 훨씬 더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가)의 타모스 왕의 견해는 타당성이 결여된 주장이다.
다음은 제시문 (다)에 대한 파악이다. 제시문 (다)에서는 사람들이 문자를 통해 소통에 참여함으로 인해 소통이 더욱 활발해졌으며 지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었음을 주장한다. 현대 시대에는 중세 시대와 달리 전자 매체의 보급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자 매체의 파급력 덕택에 근대에 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통한 소통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다)의 관점에서 (가)의 타모스 왕의 문자에 대한 견해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가)의 타모스 왕의 견해는 현대 시대에서 문자가 가진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볼 수 있다. (다)에서는 문자를 통해 서로 의사소통하면서 지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계속 의문을 던지고, 그들 스스로 올바른 방향으로 지식을 수용하게 되는 점을 타모스 왕은 놓쳤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다)와 같이 문자만이 사회 전체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타모스 왕의 견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음성 언어로는 소모임의 의사소통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자에 기반한 디지털 매체가 소통범위를 넓혀 전 세계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고 지혜의 외양이 아닌 진정한 지혜를 주고 그것의 확장까지 가능케하는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점에서 (가)에 나온 타모스 왕의 견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시문의 내용과 작성해야 하는 내용을 살펴 보았으니 수험생의 답안을 살펴 보자. 수험생의 답안은 3단락 구성으로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중 1단락은 (가)에 나온 타모스 왕의 문자에 대한 견해를 정리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문제될 것을 찾을 수가 없다. 2단락에서는 (나)의 주장과 근거를 정리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타모스 왕의 견해에 대한 평가도 빠짐없이 잘 드러나고 있다. 물론 내용도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3단락이다. 제시문 (다)의 입장을 정리한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를 통해 타모스 왕의 견해를 타당성이 있는 견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수험생은 제시문 (다)에서 문자를 통해 사람들이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됨을 지적하며 이로써 개인들은 널리 진리,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비틀며 왜곡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는 문자로 인해 개인이 단지 자신의 생각만을 펼치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여긴다고 주장하며, (가)에서 말한 타모스 왕의 견해에 대해 긍정적인 동의를 하고 있다. 이는 문자를 사용할 줄 알았던 기존의 권위있는 소수들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고 권위를 해체시켜 수평적 연대를 통한 올바른 소통과 지식의 공유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박근형ㆍ종로학원 논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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