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이 이끄는 회사들의 회계장부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커지고 있다. 회계장부 조작을 통한 비자금조성이나 재산은닉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이미 관련조사를 시작했지만, 철저한 책임규명과 보상재원 추적을 위해선 유 전 회장 일가의 모든 계열사에 대한 회계장부를 낱낱이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8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처음 외부감사를 받기 시작한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세광공인회계감사반(이하 세광) 한 곳에서만 회계감사를 받았다. 특히 감사반 구성원 3명 중 리더 격인 회계사 김모씨는 13년 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고, 나머지 2명 역시 2004년과 2005년 한 차례씩 교체됐을 뿐, 10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또 핵심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다판다 역시 김씨가 소속된 세광이 2005년, 2007~2013년까지 감사를 진행했으며, 노른자쇼핑 국제영상 트라이곤코리아 등도 세광으로부터 감사를 받았다.
회계법인 내 특정 회계사가 한 기업의 감사를 5년 이상 지속적으로 맡는 건 업계에선 찾아보기 힘든 일. 피감사업체와 유착 가능성이 있어 당국은 관련 규정을 통해 이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유 전 회장측은 현행 법체계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에 따르면 한 회계법인이 특정기업을 연속으로 감사할 경우, 법인 내 똑 같은 회계사가 상장법인은 3년 이상, 비상장법인은 5년 이상 감사할 수 없다. 때문에 회계법인이 아닌 감사반이 비상장사에 대한 외부감사를 맡을 경우, 기간 및 회계사 교체에 대한 제약 없이 얼마든지 감사를 이어갈 수 있고, 유 전 회장측은 바로 이 점 때문에 회계법인 아닌 감사반을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사반은 공인회계사 3명 이상이면 한국공인회계사회 등록절차를 거쳐 코스닥 상장사 및 비상장사에 대한 외부감사를 맡을 수 있다.
허술한 감사를 선택한 결과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우선 유 전 회장 측이 ㈜세모 재인수를 한창 진행하던 2008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특이점이 발견된다. 당시 유 전 회장측은 '새무리'라는 회사를 앞세워 관계사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인수를 추진했는데, 당시 양 사의 감사보고서 상 채권채무 금액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예컨대 한영회계법인이 보고서를 쓴 ㈜세모의 경우, 새무리에 갚아야 할 정리채무잔액이 10억7,000만원으로 기재된 반면, 세광이 보고서를 만든 새무리의 채권미수금은 67억8,000만원이었다. 한 회계전문가는 “유 전 회장이 새무리를 앞세워 허위 채권을 신고한 뒤 수십억원을 상환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주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아이원)는 다른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발생한 금액이 상이하다.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는 2012년 아이원과 거래에서 지출한 돈이 3억8,400만원이라고 했지만, 아이원은 매출액을 8,400만원으로 기재했다. 약 3억원의 행방이 묘연한 것. 또 다른 회계전문가는 “일반적인 감사보고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후 회계연도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또 다른 조작이 이뤄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정당국은 아마도 감사반 외에 또 다른 회계법인의 '코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페이퍼컴퍼니와 조세피난처까지 등장하는 유 전 회장측의 지분구조나 자산운용은 전문가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은닉재산 추적을 위해선 반드시 정확한 회계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