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원자력발전소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태 이후 정부는 비리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각종 대책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임시방편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시스템 자체의 개선을 위한 핵심 방안들은 수개월째 시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낮잠’을 자고 있는 상태. 국회의 거듭되는 공전(空轉)으로 관련 내용들을 담은 법안들의 처리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원전업계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도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원자력당국에 따르면 작년 8월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은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소관 상임위(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 계류돼 있다. 해당 법안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전부품 성능검증관리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성능검증관리기관 종사자의 벌칙 적용시 공무원으로 의제해 처벌을 강화토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했던 대책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인데, 부품 검증업무와 관련해 원자력 규제기관(원안위)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당초 ‘원전 비리 근절’에는 여야가 이견이 없는 만큼 조속한 처리가 기대됐던 이 법안은 그러나 지난해에도 올해 2, 3월에도 연거푸 통과되지 못했다. 여야간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는 방송법 개정안 등 미방위 소관 113개 법안들과 함께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4월 임시국회에선 원자력 방호ㆍ방재법과 원자력 안전법 등 시급한 법안들만이라도 우선 처리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시한이 촉박해 낙관하긴 힘들어 보인다.
이와 별도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전 감독권한을 강화한 ‘원자력발전 사업자 등의 관리ㆍ감독에 관한 법률안’의 제정도 결국 무산됐다. 지난해 말 발의된 이 법안은 ▦원전 공공기관 임원과 일부 직원의 재산등록 의무화 ▦퇴직 후 2년간 업무 유관 사기업 취업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애초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소관 상임위(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소위의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아울러 이 법안은 “원자력 이용 진흥과 안전 규제를 분리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를 거스르는 법안”이라는 반대여론도 만만찮아 여야간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현재로선 이들 법안의 처리는 6월 임시국회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법적 공백’까진 아니더라도 ‘개점휴업’ 상태가 장기화하는 셈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이번에 또 다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 처리가 안 될 경우, 행정조치를 통해서라도 제도적인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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