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22년만에 미군기지 주둔을 다시 허용하기로 28일 미국과 방위협력확대협정을 체결하자 야당에서 위헌 소송을 내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필리핀 내에서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분쟁 중인 중국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지만 반미 감정의 골도 여전히 깊다. 미군이 실제 주둔하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8일 아시아 4개국 순방 마지막 국가인 필리핀에 도착했다. 오바마 도착 직전 필리핀 국방장관과 주필리핀 미국 대사는 방위협력확대협정에 서명했다. 10년 기한의 순환배치 형태로 필리핀에서 완전히 철수한 미군기지를 22년 만에 부활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지 언론은 “필리핀 정부가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비크만 해군기지 등 과거 미군이 사용하던 루손 섬 북부지역의 옛 기지를 다시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군 기지 부활에 야당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좌파 야당 바얀무나당 관계자는 대법원에 방위협력확대협정 위헌 소송을 냈다고 27일 밝혔다. 바얀무나당은 이번 협정이 자주외교정책과 핵무기 반입금지 등을 명시한 필리핀 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대법원의 위헌심판 결과가 수개월 걸릴 수도 있다”며 “그 사이 정부는 협정 내용을 빨리 이행하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좌파 정당 아크바얀당 소속 당원 수십 명은 이날 수도 마닐라에서 방위협력확대협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가두시위 중 일부는 성조기를 불태웠다.
필리핀 상원 일각에서는 이번 협정이 외국 병력과 장비 배치가 수반한다는 점을 들어 비준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단순 행정협정이어서 비준이 필요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1991년 미군기지 조차기간 연장안을 상원이 찬성 11, 반대 12표로 통과시켜 완전 철수시켰던 사례가 되풀이될까 봐 상원 비준 자체를 막으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마닐라에서 아키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남중국해 영유권분쟁 공동 대처 등 아시아 지역에서 날로 증가하는 중국의 군사력 대책 마련에 뜻을 같이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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