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의 공기압은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고, 트렁크에 쓰지 않는 물건은 치웠으며, 주유 때 탱크 반만 채우는 건 이제 기본이다. 그리고 급가속과 급감속은 웬만해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인연비 채우기가 쉽지 않다. 가짜 연료? 뻥연비? 차에 다른 문제라도? 매서운 눈초리를 이리저리 쏘아보지만 정작 자신의 운전습관을 되돌아 보는 운전자들은 많지 않다.
자동차 연비운전대회 수상자 등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연비는 ‘운칠기삼’이다. 운전습관이 7할이요 나머지 3할은 기계(자동차)의 몫이라는 이야기. 중고차 전문업체 SK엔카가 지난 19일 실시한 ‘에코드라이버 선발대회’에서는 공인연비 2배를 훌쩍 넘긴 기록들이 쏟아졌는데, 우승자(2004년식 스마트 포투 쿠페)는 47.9㎞의 연비를 뽑아냈다. 공인연비(리터당 19.2㎞)보다 무려 2.5배나 높은 수치다. 시내와 고속도로가 포함된 왕복 180㎞를 주행한 대회로, 출발 전 연료를 가득 넣고 코스를 완주한 뒤 다시 가득 주유해서 들어간 연료량으로 실연비를 내고 공인연비와 비교하는 방식의 경기였다.
내 차의‘경제속도’를 찾아라
이 대회 우승자 문선옥(38)씨의 비결은 ‘최대한 높은 기어를 사용한 경제속도 운전’로 요약된다. 대회에 몰고 나간 차가 엔진 배기량 700cc의 워낙 연비 좋은 경차이기도 했지만 기어를 수동모드로 전환, 가급적 높은 단수의 기어를 적용해 엔진의 회전(RPM)을 최대한 줄였다는 것이다. 문씨는 “6단 자동변속기 차량의 경우 5단까지는 일정한 간격으로 기어비율이 바뀌는 가속기어이고, 최고 단인 6단은 ‘항속기어’로 힘은 부족하지만 연비에 특화된 높은 비율의 기어”라며 “항속기어의 사용을 최대한 늘리고, 이 기어가 들어가지 않는 낮은 속도에서도 가급적 높은 단수의 기어를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면 공인연비보다 높은 연비는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방법은 주로 고속도로 등 평지 주행 때 사용할 수 있다. 문씨는 “최고 단인 6단을 넣은 상황에서 액셀을 살살 밟아 엔진 회전(RPM)을 최소화 해 시속 60㎞로 달렸다”며 “이때 엔진 회전 수는 아이들링(시동을 켜고 정지해 있을 때) 수준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공회전 때 소모되는 연료량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양으로 시속 60㎞로 달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초보자나 여성운전자들이 변속기를 수동모드로 바꿔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문씨는 “자동변속기의 경우 최고 단으로 바뀌면서 RPM 게이지가 떨어지는 순간의 속도가 해당 차량의 경제속도”라고 말했다. 경제속도는 통상 60~80㎞/h로 표현되지만 차량 무게, 변속기 단수, 도로 등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퓨얼컷, 락업클러치 정도는 알아둬야
퓨얼컷(Fuel cut), 락업클러치(lockup clutch)는 이번 대회 수상자 전부가 십분 활용한 기능이었다. 퓨얼컷은 말 그대로 엔진으로 가는 연료를 차단하는 기능. 내리막길을 가거나 감속을 해야 할 때 등 엔진에 연료를 공급해 힘을 낼 필요가 없는 구간 주행 때 이용하면 연료를 아낄 수 있다. 작동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브레이크를 사용 하기 전에 변속기를 수동 모드로 바꿔 마이너스(-) 방향으로 움직여 기어 단수를 낮추면 그만이다. 이때 RPM이 올라가긴 하지만 연료가 더 많이 들어가서 그런 건 아니다. 바퀴에서 엔진으로 힘이 거꾸로 전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리터당 공인연비 15.2㎞인 2013년식 올뉴 모닝으로 28.5㎞를 주행한 김 환(24ㆍ4등)씨는 “특히 내리막길에선 액셀을 밟지 않아도 가속이 되면서 RPM이 올라가는 탓에 ‘기름을 더 많이 먹는 것 아니냐’며 착각한 운전자들이 기어를 중립으로 놓는 예가 있다”며 “이 경우 기름이 더 든다”고 말했다. 또 내리막길에서 변속기를 중립으로 놓을 경우 바퀴와 엔진 결속이 끊기는 등 안전운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항속기어 사용과 함께 고속 주행 때 반드시 활용해야 할 기능으로 전문가들은 ‘락업클러치’를 꼽는다. 자동변속기의 동력 전달 원리는 흔히 두 대의 선풍기를 마주보게 놓고 한쪽만 전원을 켜서 돌리면 나머지 선풍기도 따라 돌아가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락업클러치는 이 과엉에서 소실되는 에너지를 잡는 역할을 한다. 두 선풍기 날개를 직접 붙이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업계 관계자는 “액셀을 30% 정도 밟아 일정 RPM을 유지한 채 정속주행을 하다 보면 RPM이 살짝 떨어지면서 한번 더 변속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바로 락업클러치가 작동됐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2000년 전후로 출고된 웬만한 차량의 자동변속기에는 모두 이 기능이 들어있다. 정속주행을 강조하는 이유는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는 과정에서의 연료 낭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락업클러치를 활성화해 자동변속기의 효율을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 셈이다.
급급급 ‘3급 금지’는 고전
대회 수상자들은 연비 운전의 고전으로 꼽히는 급출발, 급가속, 급정지를 금한 이른바 ‘3급 금지’를 철저하게 지키는 운전자들이었다. 리터당 공인연비 13.7㎞의 2007년식 폴크스바겐 파사트로 25.6㎞를 주행한 한용호(40ㆍ5등)씨는 “연비운전은 결국 연료를 태워서 만든 운동에너지를 죽이지 않고 최대한 살려 나가는 것”이라며 “브레이크 사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차간 거리를 유지하고 앞의 앞의 차까지 보면서 운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수”라고 말했다. 이 밖에 ▦신호순서가 예측 가능한 신호대에 멈춰섰을 경우 시동 끄기 등 공회전 최소화 ▦30% 이상 액셀 밟지 않기 ▦에어컨 사용 자제 ▦차창을 닫고 운행하기 등도 공통적으로 확인된 비결이었다.
김필수 에코드라이브운동본부 대표는 “경제운전 강의를 받는 뒤 모든 사람들이 연비 개선 효과를 봤고, 그 동안 자신의 운전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확인한 뒤 놀란다”며 “연비 문제는 1차적으로 하드웨어(차량)의 문제지만 소프트웨어(운전습관)로 상당 부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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