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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찍는 사진의 윤리

입력
2014.04.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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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내게 취재 과제를 줄 언론사는 없었다. 전국의 언론사가 모두 기자를 파견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갔다. 현장을 보고 기록해야만 할 것 같은 무거운 책임감이 밤차에 몸을 싣게 한다. 진도대교를 지나 39km를 달리면 해변이 나타나고, 멀리 팽나무 숲이 인상적인 팽목항에 도착했다. 16일 오전 8시 48분쯤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서해 상에서 제주로 가는 세월호가 침몰했다. 세월호에는 안산시 단원고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 등 총 476명이 탑승했고, 그중 구조된 이는 단 174명이었다.

그 소름 돋을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는 20년 취재 경험상 처음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분노에 찬 고성만이 그 침울한 정적을 깨뜨렸다. 몇 차례의 시신 운구, 해양수산부 장관의 소동도 지나고 팽목항은 무거운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수많은 관변단체와 군복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우익단체 노인들과 깨알같이 홍보에 열 올리는 봉사단체들. 하릴없이 대기하는 구급차와 피해자 가족들을 소리 없이 감시하는 사복 경찰들. 또 수많은 기자, 피해자 가족들은 그 사이에서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들은 묻고 있었다. 국가란 무엇이었냐고?

팽목항 현장을 오가는 수백 명의 기자가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피해자 가족들의 시선은 불신을 넘어 혐오하고 적대시했다.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렸다. 그들의 펜과 카메라는 종횡무진 가족들의 고통을 후벼 파는 칼날이 됐다. 계속되는 오보와 왜곡 진실을 더욱 은폐하고 멀어지게만 했다. 최근 기자협회와 사진기자협회가 이런 상황에 대해 윤리 지침을 마련했다. 기자협회는 “영상취재는 구조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공포감이나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도록 근접 취재 장면의 보도는 가급적 삼간다.”라고 했다. 사진기자협회도 윤리규정을 통해 “우리는 공적인 이익을 위한 사안을 제외하고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진취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사진기자들은 경쟁하듯 피해자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 전송하고 곧바로 지면화 했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진기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취재 문제에 있어서 특히 초상권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초상권 문제는 재산권이 아닌 인격권이다. 사진기자들 대다수 심리 안에는 공리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사진 정보가 다수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 따라서 더 참혹하고 비참할수록 그 가치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사진을 촬영하고 지면화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윤리적 절대주의 입장에 선다. 특히 나의 비참한 얼굴이 사회 이익과 상관없고 오히려 내게 깊은 상처만 남긴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나의 인격은 침해 할 수 없는 영역이며 사진촬영에 대해서는 승낙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타협점은 있을까? 베트남전의 베트콩 즉결처분 사진으로 전쟁의 방향을 틀어버린 종군 사진기자 에디 아담스는 한 전투현장에서 공포에 얼굴이 일그러진 18세 해군병사의 사진을 찍으려다가 포기하고 만다. 그의 답은 이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게 해주기를 기대한 만큼, 나도 다른 사람을 대하라.”

사실 나도 현장에서는 ‘기레기’였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현장에 존재한다면 역시나 언론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로 출발했던 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기레기’가 찍는 사진이 시간 지나면 우리 사회의 과오를 되돌아볼 기록도 되고, 인간의 고통을 공감할 예술이 되기도 한다. 쓰레기 취급당해도 그 고민이 이 시대 기록을 남기기 위해 그 자리에 수치를 무릅쓰고 존재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데스크에 몰리고 피해자 가족에 몰리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윤리를 고민하는 사진기자들도 있었다. ‘기레기’를 선택했으니 정신적인 고통도 그들의 몫이라 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지금 새벽, 글을 쓰는 고기리 집에 빗소리가 요란하다. 먼 진도 팽목항 앞바다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이상엽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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