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경기 파주의 당동 외국인 투자지역에 5억 달러를 들여 평판디스플레이 용 유리기판 성형 공장 건설을 추진하던 세계 3위 회사인 일본전기초자(NEG)의 한국법인 파주전기초자(EGkr)에 비상이 걸렸다.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바로 옆 파주변전소가 아닌 6㎞ 이상 떨어진 월릉변전소에서 전력선을 끌어와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 일본은 전기를 파는 민간 회사가 전력선 공사를 하지만 한국은 전기를 사는 쪽에서 공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알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
김정필 EGkr 부장은 파주시 이주현 기업지원과장(현 조리읍장)과 윤주영 산업단지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은 도로공사를 했던 건설 회사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건설 회사 측은 새로 갈아엎으면 시간과 비용이 든데다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수 없다며 거부했다. 두 사람은 추가 비용 2억 원은 EGkr이 내고, 나중에 생기는 문제는 파주시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며 끈질기게 설득했고, 어렵사리 공사를 시작했다. 김 부장은 “파주 성형 공장은 일본 밖에 짓는 첫 해외 공장이고 제 때 짓지 못하면 글로벌 물량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길 뻔 했다”며 “외국기업인데도 모든 문제를 책임지겠다며 우리대신 발 벗고 나선 파주시 공무원 덕분에 공사를 무사히 마쳤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공장 가동에 들어간 EGkr은 추가로 5억 달러를 들여 제 2공장을 짓고 있다. 김 부장은 “유리기판 기술력의 90%가 성형 공정에서 좌우되기에 해외 공장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며 “파주시의 적극성이 2년 새 1조원 이상을 투자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사분계선 인근의 군사도시 파주시는 현재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단지를 비롯해 20여 개의 크고 작은 산업단지가 둥지를 튼 대표적 기업도시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입주 기업을 식구처럼 살뜰히 챙기고 돕기 위해 앞장서는 파주시 공무원들의 노력이 있다는 게 많은 기업 관계자들의 얘기다. 그 중에서도 이 읍장, 윤 팀장은 기업인들에게 ‘대표 기업 도우미’ ‘공무원 같지 않은 공무원’이라고 불린다.
25일 만난 두 사람은 “군사도시라는 한계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파주 전체에 퍼져 있었고 이런 부정적 분위기를 바꾸는 길은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시장부터 말단 직원 모두가 안 되는 방향으로 규제를 들이대기 보다는 어떻게 규정을 지키면서도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2012년 문을 연 LG디스플레이 연구개발(R&D) 센터도 마찬가지. LG디스플레이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R&D조직을 한데 모아 센터를 지었는데 2011년 말 준공을 앞두고 주차장이 돌발 변수가 튀어나왔다. R&D센터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에 대형 주차장이 있는데도 파주시 건축과는 센터 부지와 주차장 사이에 있는 만우천 때문에 주소 상 지번이 달라 센터 옆에 주차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이 읍장, 윤 팀장에 SOS를 쳤다. 이 읍장은 “다른 지방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고 관계 법령과 규정을 샅샅이 공부했다”며 “건축과 담당자를 데리고 공사 현장을 보여주면서 상식적으로 주차장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고 설득했고 동의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근행 LG디스플레이 차장은 “주차장을 지으려면 20억 원 이상이 든데다 준공이 늦어지면 새 제품 출시도 미뤄지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치명타”라며 “동료 공무원들까지 설득하는 두 사람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때문에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파주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30일 준공식을 가질 중소기업중앙회의 첫 중소기업전용 산업단지를 비롯해 현재 행정 절차만 남겨둔 단지가 5개나 된다. 산업단지 하나 유치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다른 지방자치단체 기업 지원 담당자들로부터 하루에도 여러 통 전화를 받는다. 윤 팀장은 “그 많은 기업을 어떻게 유치했는지 노하우를 알려달라 하는데 기업이 느낄 불편함을 알아보고 먼저 찾아가 해결해 주려 애써보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두 사람은 기업 관계자들 전화를 받느라 자주 자리를 떴다. 윤 팀장은 “입주 기업에게 새로 바뀐 규정이나 법령을 알려주고 어떻게 대비하라고 설명해주는 애프터서비스(AS)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읍장은 “기업 사람들하고 가깝게 지내면 뭐 받아 먹는 것 없느냐며 백안시하는 게 사실”이라며 “우리가 그런 오해를 염려하며 소극적으로 기업을 대했다면 지금의 파주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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