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가 2년 전인 2012년에 한국선급이 대형 선박검사를 독점하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선박검사를 외국 검사기관에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백지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지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책임회피, 낙하산 인사로 인한 제 식구 감싸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결국 공직사회에 팽배한 무사안일이 참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를 무산시킨 것이다.
27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1970년대부터 지속돼온 선박검사의 독점 체제가 세계적인 추세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국토해양부 시절이던 2012년에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국장과 과장, 사무관 등이 팀을 꾸려 선박검사를 해외 업체에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앞서 해수부는 작년 7월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국적선 정부검사 대행권 개방검토 연구’에 대한 용역을 맡기고 같은 해 12월 결과를 받아, 올해 2월 이해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1년 전부터 선박검사 개방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온 것이 확인된 것이다. 한국선급이 세월호 증축 후 복원성 실험 결과 “이상 없다”며 사실상 운항허가를 내준 시점이 2013년 1월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해수부가 작년 7월 처음 검토한 것처럼 발표한 것은 책임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개입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다.
선박검사 외국 기관 개방 방침은 정권이 바뀌면서 결국 원점 재검토로 후퇴했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관료는 “재작년 말에 정권이 바뀌고 조직개편을 통해 국토부가 해수부로 나뉘는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들이 대부분 바뀌었다”며 “정권교체기의 어수선한 시기에 흐지부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감한 이슈인 탓에 미뤄진 것이란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박검사독점 구조 타파는 선주협회 측에서 해마다 제기해 온 문제였고, 세계적 추세 역시 해외개방이 대세여서 정부도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며 “하지만 해수부 출신들이 한국선급의 회장이나 임원을 맡고 있어, 해수부 공무원들이 한국선급의 이권에 반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7월 외부 기관에 연구 용역을 맡긴 것도 사실상 해외개방을 최대한 늦추려는 ‘꼼수’였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물이 있는데도 외부기관에 용역을 맡기는 것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 책임을 떠넘기거나 추진을 늦출 때 사용하는 단골 방법”이라며 “이런 과정에서 선박검사 개방이 2년 이상 연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25일에야 선박검사권의 해외 개방을 사고대책에 포함시켰다. 해수부는 이날 “용역 기관의 제언에 따라 정부대행검사의 개방시기를 일정기간의 준비를 거친 뒤 점진적으로 개방키로 하고 합리적 방안을 마련 중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선박검사의 해외시장 개방은 이제 불가피한 시점이 됐다고 보고 있다”면서도 “다만 국내 기관의 경쟁력 등을 감안해 시기는 조율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여전히 해외개방에 소극적 입장을 나타냈다.
해수부 뒷북 대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해수부는 이날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감독하는 선박운항관리자를 여객선사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채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안전운항관리 업무를 해운조합에서 떼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3년 전에 여객선 안전관리를 해운조합에서 분리해 공단과 같은 독립된 조직에 맡기자는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해수부가 나서 예산 등의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입법이 무산된 사안이다.
해수부는 이날 6월부터 연안여객선의 승선권 발권이 전면 전산화되고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으면 여객선을 탈 수 없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항공기 블랙박스 역할을 하는 항해기록장치(VDR)을 여객선에 의무 장착하기로 했다. 또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수십년간 적성심사 안 받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선장이 새로운 항로에서 항해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적성심사를 받도록 선원법과 하위법령을 고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선박 안전 규제강화에 대해 번번히 반대해온 해수부가 뒤늦게 규제강화 대책을 내놓는 데 대해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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