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엄마 왔어. 어서 이리 내려와 봐.”
이제는 영영 손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떠난 아들. 찢어지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향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영정 속 이모(17)군은 환하게만 웃고 있다. 사진 속 아들 얼굴이라도 한번 어루만져보고 싶어 까치발까지 해봤지만 사진마저도 품을 수 없는 현실에 어머니는 끝내 무너져 내렸다. 자식 잃은 어머니의 애 끊는 슬픔에 조문객들도 어렵게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의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안산올림픽기념관에는 25일에도 가족과 조문객들의 애통한 눈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분향소 설치 사흘째인 이날 애도의 발길은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져 오후 8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는 6만3,700명을 넘어섰다. 분향소 제단에는 단원고 학생 90명의 영정사진과 위패가 나란히 놓여 슬픔에 빠진 조문객들을 맞았다. 맑디맑은 아이들의 미소 띤 얼굴 앞에 고개 숙인 어른들은 오열했다. 조문객들은 제단 앞에 켜켜이 쌓아 놓은 국화 송이만큼 희생자들의 마지막 길이 평안하길 바라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사랑하는 손자를 떠나 보낸 한 할머니는 분향소를 찾았다가 그만 슬픔에 주저앉았다. 할머니는 사고 전날 밤 손자인 이모(17)군의 꿈을 꿨다고 한다. “세탁기가 물속에 잠겨 있는데 세탁기에 우리 손자가 빠져있는 거야. 놀라서 내가 막 업고 나왔어.” 할머니의 꿈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불길한 느낌을 애써 무시했지만 5시간 후 “배가 가라앉아요”라는 아들의 다급한 마지막 전화를 받았다. 이 군은 사고 다음날인 17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날 새벽 딸의 장례를 마친 한 유가족은 슬픔을 삭일 시간도 없이 분향소에서 딸의 영정 사진을 되찾아갔다. 손녀의 죽음을 아직 알지 못하는 할머니가 혹여 방송을 통해 손녀의 사진을 보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다 내린 결정이다. 보자기에 싼 딸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꼭 품은 어머니의 축 처진 어깨에선 딸을 보낸 슬픔과 함께 노모의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외국인들도 분향소를 찾아 눈물을 보탰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패트릭 라이스(48ㆍ캐나다)씨는 “어머니 나라에 두번째 왔는데 오자마자 너무도 슬픈 소식을 듣게 돼 일정을 잠시 미루고 분향소를 찾았다”며 “어머니가 항상 얘기하던 그 아름다운 나라에서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날 분향소 앞에선 대전에서 조문 온 이모(58)씨가 ‘올드 랭 사인’을 첼로로 연주하며 조문객들과 슬픔을 나눴다.
안산=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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