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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이가 기다린 오빠는 이미 5일 전에 주검으로

입력
2014.04.2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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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서” 날마다 부둣가에 나와 앉아 바다만 바라보던 열네 살 소녀 아름이의 꿈(본보 4월 22일자 1면)은 끝내 무너졌다. 아름이가 기다리던 오빠 성원(17ㆍ단원고2)군은 5일 전부터 목포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5일 새벽 1시쯤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가족대기소에서 아름이 어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드님이 목포 한국병원에 안치돼 있습니다.” 지난 20일 오전 6시 20분쯤 인양된 신원 미상의 ‘37번’ 사망자가 DNA 검사 결과 성원군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성원군이 시커먼 바다 속에 잠긴 배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줄로만 알던 가족은 할 말을 잃었다.

성원군의 부모는 사고가 난 16일 이후 줄곧 팽목항 가족대기소에서 지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상 착의가 적힌 사망자 명단을 살폈지만, 아들과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37번 신원 미상자는 ‘30대 추정 남성’이라더니 어떻게 내 아들일 수 있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37번째 신원 미상자 특징 1. 성명: 미상(30대 추정) 2. 성별: 남…’ 아름이 삼촌이 내민 A4 크기 흰색 종이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발견 당시 해경이 기록한 인상 착의는 ‘키 175㎝, 넓은 이마, 짧은 머리, 우측 무릎 상처, 통통한 편, 연두색 반팔 티셔츠, 반바지 운동복’이 전부였다. 그 뒤 ‘손목에 하늘색 패션 시계’ 등이 추가됐지만, ‘30대 추정’이란 글귀 탓에 아름이 부모는 아들일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이날 오전까지도 팽목항 가족 대책본부 천막 앞 사망자 명단 게시판에는 37번 이름란에 빨간 펜으로 ‘미상’으로 적혀 있었다.

성원군은 차갑게 식어 뭍으로 나온 지 5일 만에야 그렇게 그리던 가족의 품에 안겼다. 정부 대책본부가 사망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실종자 가족들의 DNA 샘플 채취에 나선 것은 지난 19일. 아름이 어머니는 바로 그날 달려가 면봉으로 입안 구강세포를 살짝 긁어내는 검사에 응했다. 당국은 24시간 안에 신원 확인이 가능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름이 삼촌은 “오늘까지 소식이 없으면 신원 미상자의 시신이 있는 병원을 모조리 찾아가려고 했다”면서 “아이 이마가 많이 찢어져 있어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가족은 이날 경기 안산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다. 아버지는 “(해경의 착오가 있었지만) 자식을 일찍 찾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면서 “내 가슴에 다 묻고 우리 아들을 조용히 보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목 놓아 우는 어머니 곁을 말없이 지키던 아름이가 이날 오후 오빠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오빠, 다음 생에는 웃는 모습으로, 안전한 곳으로, 가족끼리 여행 가자. 더는 힘들지 말고….’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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