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등록 의무자였던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의 임ㆍ직원은 퇴직 날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안에 소속했던 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인 영리 목적의 사기업체나 영리사기업체의 이익과 협력 등을 위해 설립된 단체에 취업할 수 없다.”(공직자윤리법 제17조)
법조문만 읽으면 퇴직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퇴직 공무원이 퇴직 전에 하던 일과 관련 있는 민간 단체에 취직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심사에서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면 해당 단체에 취직할 수 없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직자윤리법에 구멍이 뚫린 탓이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와 관련 책임을 면하기 힘든 한국해운조합과 한국선급(KR)은 전직 해양수산부 관료가 중요한 자리를 도맡아왔다. 안전행정부 윤리담당관실 관계자는 “공직자윤리법에 예외 조항이 많다”고 털어놨다.
첫 번째 구멍은 취업제한 범위가 좁다는 데 있다.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이란 조문을 뒤집으면 ‘관련 없는 부서에서 일했다면 민간단체에 취직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즉 해수부 출신 관료라도 항만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면 선박 관련 분야에 취직하는데 제한이 없다.
‘공직유관단체’에 대한 취업 허용도 문제다. 공직유관단체는 정부가 일을 위탁하거나 출자한 단체, 정부가 임원 인사를 승인하는 단체를 말한다. 이런 단체 취업 시 매년 정부에 재산 내역을 신고하기만 하면 되는데, 신고 재산을 공개해야 하는 기관은 867개 단체 중 297개뿐이다. 문제의 해운조합도 공직유관단체이지 재산공개 대상이 아니다. 전직 해수부 관료가 이사장과 본부장을 맡고 있지만 이들도 재산을 공개하지 않는다. 해운조합은 정부를 대신해 여객선의 운항을 관리해왔고, 보험업까지 하는 대형 이익단체이지만 여전히 사회의 감시망 밖에 있는 것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퇴직 전에 근무부서를 바꿔 취업제한을 피하는 ‘경력세탁’을 막으려고 2011년에 업무관련성 판단 기간을 퇴직 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면서도 “해운조합에 대해선 별다른 규제가 없었다”고 인정했다.
정부는 올해 초 3,960개에 달하는 기업을 취업심사 대상으로 지정했지만 여기에도 구멍은 있다. 비영리 단체는 아무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더라도 대상이 되지 않는다. KR는 정부를 대신해 대형 선박의 안전검사를 독점하면서도 민법에서 규정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라 퇴직 공무원이 자유롭게 취직해왔다. 그런데 비영리단체라는 KR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선박검사 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아 지난해에만 1,200억원의 수익을 올리는데 그치지 않고 ‘급행료’명목으로 거액의 뒷돈을 받아 왔다는 해운사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윤환 건양대 국방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예외사항의 틈을 이용해 공직자가 퇴직 후 공직유관단체나 신생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면서 “업무관련성을 따지는 심사를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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