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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그렇게 애도하렵니다

입력
2014.04.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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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의 연주회를 취소해야 하는지 여전히 고민에 빠진 채, 안산의 합동 분향소를 향했습니다. 참혹한 비극을 두고 평소처럼 밥먹고 숨쉬는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참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곡은 ‘수몰된 성당’을 묘사한 드뷔시의 작품인데, 그 고요하고 몽환적인 악상과 이 악다구니 같은 현실을 아무렇지 않은 듯 넘나드는 일이 점점 힘에 부쳤습니다. 문득 작곡가에게 대들고도 싶었습니다. 수몰된 성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실체를 제대로 알고나 작곡한 것이냐고…. 분향소에 도착하니 눈물샘과 함께 숨통도 동시에 트입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키워왔던 죄책감의 실체를 이제야 직접 대면한 셈입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티없이 예쁘고 늠름했습니다. 영정 속 사진은 대개 학생증을 위해 찍은 증명사진인 듯 보입니다. 학생증을 만들던 날, 영정의 검은 테에 둘려질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아이들을 상상하자니, 면목을 찾을 길 없이 미안했습니다. 영정은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 이제 막 두 단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바다 깊은 곳을 벗어나지 못한 3,4층 객실의 아이들이 그 윗단을 채우게 되겠지요. 영정의 빈자리를 둘러싼 국화들이 참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5월의 연주회를 취소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건, ‘물’을 주제로 한 작품 일색의 프로그램 때문이었습니다. 수몰된 성당을 묘사한 드뷔시의 작품 외에도, 라벨이 작곡한 곡에서는 작은 조각배가 바다의 풍랑에 위태로이 흔들리는 장면까지 전달하고 있으니까요. 프로그램은 이미 세월호가 침몰되기 전 확정되어 수천 장의 전단이 배포되었고, 연주날짜를 옮기는 것은 예술의전당의 빽빽한 일정상 불가한 일이니, 위약금을 감수한 전격 취소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게다가 여러 작곡가가 탐닉해온 물의 음형과 그 예술적 장점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하건만, 사람들의 상흔을 건드리진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요. 그나마 저의 경우는 개인의 연주회라 나은 형편입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문화예술계 역시 범국민적인 애도행렬에 동참했습니다. 4,5월에 예정되었던 많은 공연과 축제들이 취소되었지요. 강동아트센터는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해온 ‘ 강동스프링 댄스페스티벌’을 포기했습니다. 전국의 13개 무용단이 대대적으로 참여하고 자체공연까지 제작하는 등 각별한 열의를 보였던 기획이었습니다. 국립국악원 역시 ‘빛나는 불협화음’ 공연을 취소하고, 다음 달 예정된 ‘별별연희’ 공연을 잠정 연기했습니다. 지인 중 하나는 6월 예정의 공연까지 취소하라는 연락을 받았더군요. 정부 보조금을 지원 받으며 무대에 올려야하는 형편이라 알아서 몸을 사리는 입장이라는 쓰디쓴 속내를 감추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공연으로 생계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낙담을 어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에 비하겠습니까. 허나 활기와 위로를 전해야하는 예술가의 소명 자체가 죄인 듯, 어디 속 시원히 하소연도 못한 채 무대를 잃어야하는 예술가들의 고충도 이 사회가 방치하는 또 다른 아픔일지 모릅니다.

분향을 마치고 나오니 벽면에 붙어있는 수백 개의 쪽지 글이 절절한 회한을 알록달록이며 반겨줍니다. 애타는 마음을 몇자 적으려는데 잠수부 아저씨가 두고 간 수경 하나가 눈에 띄입니다. 물안경 위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못 구해줘서 미안해. 사랑해. 못난 잠수부 아저씨가…” 제 마음도 그와 같아 울컥거리며 따라 적습니다. 분향소 밖으로 나오며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합니다. 지인의 따뜻한 격려가 큰 힘을 불러 일으킵니다. “네 연주가 오히려 힘든 시기와 집단 우울증을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지 모르잖아. 떠난 영혼들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함께 전하면 더더욱 의미 깊은 자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는 마냥 넋 놓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물길을 힘차게 헤쳐 나가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못난 음악가는 꽃다운 아이들을 그렇게 애도하렵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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