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국민의 눈과 귀를 배신한다면 더 이상 언론이 아닌 게 됩니다. 특히 재난보도에 있어 기자들의 속보기능이나 언론사 데스크들의 무리한 취재지시 등은 자제해야 합니다. 언론계 전반이 이번 세월호 참사보도에서 드러난 숱한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각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5일 오전 박종률(48)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임시합동분향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박 회장은 채 펴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난 학생들의 영정 사진 앞에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되뇌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언론에 쏟아지는 질타는 그에게 뼈아픈 상처다.
“세월호 참사보도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의 오보 등 실수가 잇따랐습니다. 마치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모든 실수가 실시간으로 드러나는 상황이었고요. 변명의 여지 없이 언론의 무한 책임이라고 통감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 16일 오전 방송을 비롯한 국내 언론 대부분은 중앙재난대책본부가 브리핑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구조자 등의 수치를 오보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고,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박 회장은 “정부기관이 잘못 발표한 부분도 있지만 명확하게 재확인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 가벼움으로 인해 신중치 못했던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난보도에 있어서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언론의 분위기를 꼬집었다. “재난보도는 철저하게 피재해자 및 그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도돼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기자 이전에 사람이어야 한다. 기자도 재난사고 초기 현장에선 과열된 취재 경쟁을 자제하고 차분하게 인간적인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금은 슬픔에 빠진 유가족과 분노에 찬 국민을 어떻게 어루만져 줘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의 역할”이라고 피력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3일 ‘세월호 참사보도 문제점과 재난보도 준칙 제정 방안 토론회’를 열고 각성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각 언론계 종사자와 학자, 언론시민단체 대표 등이 모여 재난보도에 따른 언론의 책임과 의무 등을 논했다. 특히 각 언론사별로 기자들의 재난보도 훈련을 실시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컸다. 이달 말에는 ‘재난보도 준칙’을 마련해 공표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에서 우왕좌왕하는 정부기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듯 언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론 보도 자세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또다시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합니다. 기자협회는 기자들의 의무와 체계적인 재난보도 교육 등을 위한 언론사의 의무 등 준칙 등을 만들기 위해 현재 위원회 구성을 준비 중입니다. 이는 신속함보단 정확한 취재가 우선시 되는 선진 언론보도 문화가 정착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박 회장은 언론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피해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사건기자들에게만 쏠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통해 언론계 전체가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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