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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못난 어른, 못난 나라

입력
2014.04.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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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들의 무참한 희생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는 온 나라에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자책과 개탄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분양소 입구 벽 등에 나붙은 각계 각층의 추모 메시지에도 그런 집단의식이 두드러진다. ‘어른들 말만 잘 들으라 해서 미안해’ ‘못난 우리나라를 용서해다오’ ‘미안하단 말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해’ ‘어른들이 미안해’ 등 못난 어른과 못난 나라에 대한 탄식이 흘러 넘친다.

▦ 사실 이번 사고는 돌이켜 볼수록 기성세대에게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수치다. 구조노력이 절실했고, 구조가 가능했던 ‘골든타임’을 허비한 채 수많은 학생들이 기울어진 선실에 갇혀 있는 걸 알면서도 제 살길만 찾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뿐만 아니다. 안이한 초동대처와 피해자와 가족들의 가슴에 또 하나의 못을 박은 구조현장의 우왕좌왕 행정, 평소 연안 여객선 안전관리에 손을 놓다시피 한 해양부 등 파헤칠수록 일그러진 기성세대의 자화상만 드러나고 있다.

▦ 물론 못난 어른, 못난 나라만은 아니었다. 단원고의 고(故) 남윤철 선생은 기울어진 선체 복도 난간을 한 손으로 잡고 필사적으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며 갑판까지 진출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아이들을 더 구하겠다며 선실로 향한 후 유명을 달리했다. 양대홍 세월호 사무장은 아내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수협통장에 돈이 입금됐으니 큰 애 학비 내. 아이들 구하러 가야 되니 전화 끊어”라고 말한 후 실종됐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이 알려진 의인만도 두 사람 외에 최혜정ㆍ전수영(교사), 박지영(승무원), 정차웅(단원고 학생) 등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 어찌 보면 이 나라의 기성세대는 아들과 손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6ㆍ25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재봉틀 돌리고 가발 만들며 나라를 일으켜 오늘날의 눈부신 번영을 이뤘고, 기나긴 독재의 고리를 끊고 민주화의 토대를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복해 내지 못한 어떤 한계 때문에 또 다시 아들들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안타깝고 참담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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