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책
콜디스트 윈터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ㆍ정윤미 옮김
세월호 참사로 마음이 무거운 와중에 6ㆍ25전쟁 관련 서적인 콜디스트 윈터가 오버랩이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전쟁을 책임진 미 8군 사령관 매튜 리지웨이 장군의 “단 한번의 승리가 중요하다”는 한마디가 지리멸렬한 정부 대응이 도마에 오른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다.
기자는 지난해 여름 중국 논픽션 작가인 왕수쩡의 한국전쟁을 읽은 뒤 중공군의 전투력에 경탄해 박실 전 국회의원의 중공군의 한국전쟁과 콜디스트 윈터를 내리 탐독했다. 콜디스트 윈터는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탐사취재로 그린 6ㆍ25전쟁사다. 읽는 이마다 핵심에 대한 인상이 다르겠지만 기자는 지휘관의 능력이 위기대응에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유엔군은 중공군 개입 당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개전 초기 중공군을 생포했지만 북한군에 딸린 일부의 의용군으로 봤다. 중공군의 능력과 참전인력에 무지한 상태에서 야간을 틈 탄 중공군의 속도전과 섬멸 포위전략에 유엔군은 속절없이 당했다. 오랜 국공 내전을 통해 단련된 탄탄한 전력과 사기, 탁월한 작전 능력을 유엔군은 간과했다. 중공군은 일절 주민에 대한 약탈을 하지 않을 정도로 선무공작도 뛰어났다. 비록 구식 무기로 무장해 있었지만 엄한 규율을 갖춘 훌륭한 군대였다.
반면에 미군은 우수한 무기만 믿었고, 유엔군 사령관 아서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을 저평가했다. 갓 태어난 우리 군은 미숙했다. 중공군은 우리 군을 타깃으로 삼아 미군을 포위 섬멸하는 작전을 구사하며 승승장구했다. 폐부를 찌르는 중공군의 피리소리만 들려도 유엔군은 혼비백산했다. 공포에 떨었다. 맥아더 장군도 결국 중공군의 약점을 파악하지 못한 탓에 사실상 작전 지휘에서 밀려났다.
이런 신출귀몰한 중공군을 상대로 전세 역전의 전환점을 마련한 이가 전복사고로 사망한 월튼 워커 8군 사령관 후임으로 부임한 매튜 리지웨이 장군이다.
당시 미군은 중공군의 거센 공세에 남한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미군은 이미 패배를 인정하는 태도로 일관했고, 중공군에 진절머리가 난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저자는 미군은 후퇴가 아니라 도망 다니기에 급급했다고 표현한다. 리지웨이는 전장에 투입된 뒤 “적을 쓰러뜨릴 힘과 무기는 충분하다 내가 걱정하는 건 우리 부대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어떻게 깨우느냐는 것”이라며 “여러 염려가 있지만 이 문제가 제일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리지웨이는 이런 미군의 군기를 바로잡았다. 그는 정찰기를 직접 타고 낮은 고도로 전장을 살피면서 종심이 긴 전장에서 중공군 보급선의 약점을 간파했다. 중공군 공세가 사흘이 고비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빠르게 터득했다. 결국 유엔군은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를 통해 중공군 대적에 자신감을 회복했다. 저자는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한 초대 미 합참의장 오마르 브래들리 장군이 “전쟁 중에 장교 한 사람이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 리지웨이는 그런 변화를 일으켰다”고 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고 전한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의 재난 대응, 위기 대응시스템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목도했다. 선장이든 지휘관이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 할 것 없이 초기 대응에 무능했다. 현장은 지금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숱한 어린 학생들이 시신이 돼 뭍으로 나올 때 모든 게 덧없어 보인다. 우리의 국가적인 능력이나 민ㆍ관의 인적 능력이나 물적 토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번의 승리, 희망이 필요한 이 순간에 흐트러진 전력을 다잡고 상황을 온전히 장악할 제대로 된 지휘관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정진황 정치부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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