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가 끝까지 아이들을 잘 보살펴 다 같이 돌아올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날인 지난 17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 김초원 교사의 부친 김성옥(55)씨.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의 딸을 잃고 가슴이 찢어졌지만 죄인 된 심정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딸이 아꼈던 제자들만은 제발 살아 오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15명은 이미 숨졌고 12명은 아직 생사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20일 한 줌의 재가 된 딸이 편히 잠들도록 돌봐 줄 겨를도 없이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장례식장을 찾고 있다. 22일 4곳, 23일 10곳, 24일에도 1곳을 찾았다. 딸과 함께 떠난 3반 제자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빈소를 찾아 “딸이 제자들을 잘 보살펴 모두 부모 품으로 돌아오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며 눈물로 사죄했다. 험한 일 당할 것도 각오했지만 돌아온 건 비난도 고성도 아니었다. 부모들은 “선생님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사과를 하세요. 경황이 없어 선생님을 찾아 뵙지 못해 오히려 저희가 죄송합니다”라며 그를 위로했다. 자식 앞세운 참척(慘慽)의 고통을 알기에,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아비라도 제자들의 부모님들을 만나 사죄하면 우리 딸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 찾았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고 안타까움이 더했다”고 말했다.
김초원 교사는 사고가 난 16일이 생일이어서 김씨의 아픔은 더했다. 함께 공부하던 단원고 교실에선 제자들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생일 축하와 고마움을 담아 미리 전한 편지 묶음이 발견됐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난 건 운명 같아요.”, “배 위에서 생일을 보내는 건 참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제자들은 15일 밤 인천에서 출항한 뒤 시계바늘이 12시를 가리키자마자 선생님의 생일 파티를 열었다. 미리 준비한 떡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축가를 부른 뒤 단체사진도 찍었다. 김 교사는 중학교에 근무하다 올해 단원고에 부임해 처음 담임을 맡았다.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낸 김 교사를 학생들은 많이 따랐고, 그런 제자들을 김 교사는 가슴으로 사랑했다.
“딸이 아이들에게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너무도 아파하고 힘들어 했어요. 어느 누구보다도 제자들을 사랑했는데…. 더 이상 그 어린 것들의 빈소를 찾는 일이 없도록,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김씨는 오래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안산=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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