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해운의 여객선 데모크라시5호(396톤급)는 2011년 6월 21일 오후 2시 41분쯤 인천 옹진군 대청도 앞바다에서 어선 해성호(9.7톤급)와 충돌했다. 안갯속에 감속하지 않고 달리다 승선원 338명을 불안에 떨게 했다. 그러나 해양안전심판원(이하 심판원)이 여객선과 선장에게 내린 징계는 견책뿐이었다.
청해진해운의 또 다른 여객선 오하마나호(6,322톤급)는 2007년 2월 17일 오전 1시 17분쯤 전북 부안군 상왕등도등대 앞바다에서 자동차 운반선 오렌지스카이(9,981톤급)와 충돌했다. 승선원 537명, 화물 413톤을 싣고 가던 오하마나호가 오렌지스카이호를 무리하게 추월하다 발생한 사고였다. 심판원은 오하마나호 1등 항해사에게 업무 정지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청해진해운 소속 선박에 사고가 잇따랐지만 사고를 조사·심판하는 심판원의 징계는 있으나마나했다. 심판원은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가 본연의 임무”라며 제재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사법처리를 해야 할 사고는 검찰과 해양경찰이 맡고 있지만 사법처리 기준도 느슨하기 짝이 없다.
24일 심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해양사고 4,832건 중 심판원은 1,404건을 조사·심판했고 이 중 89.4%(1,255건)가 선원과 도선사(導船士)의 과실로 일어났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무거운 징계인 면허 취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441건은 징계라고도 보기 어려운 견책을 받았고 1개월~1년 업무 정지가 589건이었다. 선원 외에 선사, 운항사, 선주 등에게 시정·개선을 요구한 경우도 드물었다.
이렇듯 선박사고에 대한 처리가 느슨하다 보니 선원과 선사 모두 사고를 미리 방지하거나 재발을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은 사실상 없다. 그런데도 심판원 관계자는 “사고 관련자에 대한 징계보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가 우선”이라고 변명했다.
심판원과 함께 사고를 조사하는 해경도 느슨한 입건 기준을 적용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의성과 인명피해가 없거나 운항이 안 될 정도의 선박 피해가 없으면 입건수사를 하지 않는다. 해경 관계자는 “배가 운항할 수 있는 정도면 조사만 하고 끝낸다”며 “육상처럼 잦은 사고를 일으킨 선사 등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이 없는데다 관련자, 단체를 처벌할 해경의 권한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해진해운의 오하마나호도 2006년 2월 제주항에서 프로판가스 604톤을 실은 액화가스탱커선과 충돌하는 등 불과 1년 사이 3건의 해양사고가 발생했지만 선장 견책, 구두 경고 선에서 마무리됐다. 여객선과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특별한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징계할 필요도, 권한도 없다는 해경과 심판원의 사후 처리가 결국 세월호 참사와 같은 큰 사고로 이어진 셈이다.
인천=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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