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아이들 다 꺼내야 될 거 아냐”
[부제목]유속 느린 소조 마지막 날, 실종자 가족 분노
“참을 만큼 참았다. 내 새끼가 보고 싶다고!”
실종자 가족들은 절규했다. 더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딜 수 없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자식을 찾을 것이라 믿으며 이불과 짐을 정리하고 가족대기소에서 떠날 채비를 한 일가족, ‘신원 미상’ 특징이 적힌 게시판을 한 번 더 들여다보던 엄마들, 바다를 보며 담배로 조바심을 달래던 아빠들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치를 떨었다. 유속이 가장 느려 수색작업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던 소조기(22~24일)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9일째인 24일 오후 4시20분쯤 전남 진도 임회면 팽목항. 가족 150여명이 사망자 명단 게시판이 있는 ‘가족 대책본부’ 천막에 들어가려던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까지 (실종자들을) 다 건져야 할 거 아냐. 날씨 좋다면서 대체 한 게 뭐야!” 한 엄마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내 새끼 물고기밥 되면 어쩔 거야”라고 오열했다.
이들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는 듯했다. 한 50대 남성은 “지금 당장 바지선에 폐쇄회로(CC)TV 설치해”라며 해경, 해군 등의 수색작업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최 차장이 “설치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한 40대 남성은 “‘할 수 있다면’이 아니라 ‘하겠다’라고 답하라”며 끝내 눈물을 쏟았다.
가족들은 30여분 뒤 나타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도 더딘 수색작업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 장관과 김 청장은 “둘 중 한 명이 팽목항에서 직접 수색작업을 지휘하라”는 가족들의 요구에 말 없이 고개를 숙였고, 밤 늦게까지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민간 잠수부들을 투입할 것을 재차 강하게 요구했다. 이날 정오쯤 ‘소조가 끝나가는데 해경이 잠수부 2명만 바다에 투입했다’는 이야기가 가족 대표단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이 소식을 들은 가족 40여명이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진 진도군청을 찾아 항의했다. 대책본부는 “정조시간이 끝나 가이드라인을 정리하고 나오는 잠수부 2명을 바지선에 있던 가족들이 보고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민간 잠수부들도 이날 팽목항에서 해경의 현장 투입 제한조치에 불만을 털어놨다. 한 민간 잠수부는 “바지선도 장비도 모두 준비됐고, 잠수부 30명이 목숨 걸고 구조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해경에게 묵살 당했다”며 “해경이 ‘가족들도 민간 잠수부 참여를 원치 않는다’고 말해 구조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우리 모두 원하고 있다. 해경의 거짓말이다”라며 고성을 질렀다.
이날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종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사고 첫날 오열하는 가족 1,000여명으로 가득 찼던 체육관에는 가족의 시신을 찾은 이들이 속속 떠나면서 이불만 남은 빈 자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남은 가족들은 극도로 체력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멍하게 앉아 허공을 응시하거나 탈진한 듯 누워있는 가족들이 많았다. 눈물도 말라버린 듯 덤덤한 얼굴로 애써 수색상황을 중계하는 대형 스크린을 외면하다가도 화면에서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영상이 나오면 또 눈물을 쏟아내며 흐느끼기를 되풀이했다.
이날도 체육관 2, 3번 게이트 앞에는 ‘신원 미확인자’ 정보가 담긴 A4 용지가 어김없이 붙었다. 오후 3시쯤에는 이 게시판을 가만히 바라보던 40대 여성이 쓰러져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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