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운문 번역을 표방한 셰익스피어 전집이 나온다. 민음사는 2019년까지 최종철 연세대 영문학 교수가 번역해 완간할 10권짜리 전집 가운데 1권과 7권을 25일 출간했다. 1권에는 희극 ‘한여름 밤의 꿈’과 ‘베니스의 상인’ ‘좋으실대로’ ‘십이야’ ‘잣대엔 잣대로’를 수록했고 7권에는 사극 ‘헨리4세’, 로맨스 ‘겨울이야기’ ‘태풍’을 담았다.
1993년 ‘멕베스’를 운문 번역한 이래 20여년간 셰익스피어 번역에 매진해온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약강 오보격 무운시’(iambic pentameter blank verse) 형식을 우리 시의 기본 운율인 삼사조(세 음절과 네 음절이 되풀이되는 운율)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번역했다. 운문 번역에 중점을 둔 건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이고 80% 이상인 것도 전체 희곡 38편 가운데 22편이나 되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95%가 운문으로 채워져 있다.
최 교수는 시 형식으로 쓴 연극 대사를 산문으로 바꿀 경우 시의 함축성과 상징성 및 긴장감 그리고 음악성이 거의 사라진다면서 “시적 효과와 음악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정확성을 확보하는 우리말 번역”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 대사의 운문 형식은 주요 등장인물이 격식을 갖춰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로 쓰인다. 약강 오보격 무운시는 각운이 없이 다섯 단위의 리듬이 약, 강으로 이어지는 시를 가리키는데 ‘템페스트’의 1막 2장 프로스페로의 대사 중 ‘For this.(약 강) Be sure,(약 강) to-night(약 강) thou shalt(약 강) have cramps,(약 강)’가 하나의 예다.
역자는 “두 언어가 여러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영어의 음악과 리듬을 우리말로 꼭 그대로 재생할 수는 없다”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오보’에 해당하는 단어들의 자모 숫자와 우리말 12~18자에 들어가는 자모 숫자의 평균치가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예로 든 ‘템페스트’의 대사는 일부 번역을 다음 행으로 옮겨 ‘이 일로 넌 오늘 밤 숨도 못 쉴 정도로’로 번역했다. 최 교수는 “해당 부분을 소리 내 읽어 보면 리듬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멕베스’ 등 셰익스피어의 극작품 중 정수라 불리는 비극이 담길 4, 5권도 내달 출간된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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