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승객을 버리고 달아났다 32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탈리아 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선장은 징역 2,697년형을 구형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해 1996년 이준(당시 74세) 삼풍건설산업 회장이 징역 7년6월을 선고받았다. 역대 대형재난 중 가장 높은 처벌수위가 이랬다. 101명이 숨진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의 공사 현장소장은 징역 5년,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 수련원 대표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으니 살인죄와 다름 없다’는 국민 정서와 달리 법원은 ‘사고 원인 규명 실패’와 법적 형량 등을 이유로 관대하게 처벌해 왔고, 솜방망이 처벌이 대형재난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징역 7년6월이 가장 강한 처벌
대형 참사 중 희생자(502명)가 가장 많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부실시공과 무리한 용도 변경이 원인이었다. 4층으로 설계된 건물이 5층으로 지어졌고 기둥 두께도 기준보다 25% 얇은데다 감독권한이 있는 서초구청장은 설계변경을 대가로 뇌물까지 받았다. 업무상과실치사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된 시공사 대표 이준 회장에 대해 1심 법원은 10년6월을 선고했고 항소심에서 이마저 깎여 7년6월로 확정됐다. 부실공사를 눈감아 준 서초구청장에 대한 처벌은 징역 10월에 그쳤다.
두 달 앞서 발생한 대구지하철 가스폭발 사고 역시 백화점 건설업체가 도면도 갖추지 않고 정식신고도 없이 지반을 뚫다가 가스관을 건드리는 바람에 가스가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돼 폭발, 출근길 시민과 학생 101명이 숨지는 참사로 이어졌지만 현장소장의 형벌은 고작 징역 5년이었다.
1999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도 임시가건물 사용과 불량 소방시설, 1시간 늦은 신고로 화를 키운 인재였지만 씨랜드 대표 박모씨에게 징역 1년이, 화재 취약 건물임을 알고도 허가서를 내준 화성군청 공무원에게도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박씨는 이후에도 씨랜드 참사 터에 불법 휴양시설을 운영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원인 입증 힘들고 법정형량 낮은 탓?
대형사고가 희생자와 그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비극을 남기는 것에 비해 형량이 턱없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사고 원인 규명이 어렵다는 점이다. 1994년 32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 원인과 관련해 ‘시공 불량’과 ‘관리 부실’을 두고 공방이 벌어진 가운데 재판부는 “시공사가 붕괴 원인 일부를 제공한 점이 인정되지만 유지관리 소홀 등 여러 원인이 결합돼 있다”며 현장소장(금고 2년)을 제외한 시공사 관계자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씨랜드 참사 역시 화재 원인을 ‘전기 누전’으로 보고 정밀 검식을 했지만 밝히지 못했고 방안에 피운 모기향불이 화인(火因)으로 결론이 나면서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법정형량도 낮다. 대부분의 대형 참사에 적용된 업무상과실치사죄에 대한 법정최고형이 징역 5년에 불과해 다른 혐의를 추가 적용해도 중형을 선고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형식논리에 매몰돼 법관들이 재난사고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업무상 과실이 아닌 미필적고의(피해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도 행하는 경우)에 의한 살인죄를 물을 수 있는데 법관들이 이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이준 삼풍건설산업 회장을 기소한 검찰은 1심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절반인 10년6월을 선고하면서도 “부실 공사 풍조를 불식하기 위해 중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엄상익 변호사는 “법관들이 과실로만 사안을 안이하게 바라봐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외눈박이 판결’을 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는 ‘나만 살자’는 생각으로 수백명에 달하는 희생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사고로 반드시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