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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둠벙' '여숫골' '숲정이' 지명 뒤에 무명 순교자 생매장 잔혹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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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둠벙' '여숫골' '숲정이' 지명 뒤에 무명 순교자 생매장 잔혹사가…

입력
2014.04.2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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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지난 22일 충남 당진 솔뫼 성지에서 이용호 신부가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삶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14.4.24 kong@yna.co.kr/2014-04-24 10:09:30/<저작권자 ⓒ 1980-201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014-04-24(한국일보)
(당진=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지난 22일 충남 당진 솔뫼 성지에서 이용호 신부가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삶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14.4.24 kong@yna.co.kr/2014-04-24 10:09:30/<저작권자 ⓒ 1980-201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014-04-24(한국일보)
(당진=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내포 지역의 첫 성당이자 충청도 천주교회의 모본당인 충남 당진의 합덕성당(주임신부 김성태). 1890년 주임신부 파견으로 설립됐으며 지금 건물은 1929년 완공됐다. 양관(洋館)으로 불렸던 이 성당은 종탑이 쌍탑으로 지어진 게 특징이다. 2014.4.24 kong@yna.co.kr/2014-04-24 10:46:31/<저작권자 ⓒ 1980-201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당진=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내포 지역의 첫 성당이자 충청도 천주교회의 모본당인 충남 당진의 합덕성당(주임신부 김성태). 1890년 주임신부 파견으로 설립됐으며 지금 건물은 1929년 완공됐다. 양관(洋館)으로 불렸던 이 성당은 종탑이 쌍탑으로 지어진 게 특징이다. 2014.4.24 kong@yna.co.kr/2014-04-24 10:46:31/<저작권자 ⓒ 1980-201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다”고 했다. 내포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 안으로 휘어 들어간 포구란 뜻이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당진, 서산, 홍성, 예산 등 충남 북서쪽의 평야지대인 내포가 무척 각별하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 탄생지 솔뫼 성지를 비롯해 무명 순교자 생매장지인 해미 순교성지, 가톨릭 최대 교우촌이 있었던 신리 성지,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생가터 여사울 성지…그야말로 ‘한국 가톨릭 성지 벨트’다. 때마침 8월 중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석과 124위 시복식 주재를 위해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솔뫼 성지와 해미 순교성지 등 ‘순교자의 땅’ 내포를 찾을 예정이어서 이 곳에 찾는 순례객과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안내를 받아 22, 23일 ‘내포 천주교 순례길’을 둘러보았다.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솔뫼 성지에는 키 10m 안팎의 200~300년 수령의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소나무가 뫼(山)를 이룬다’고 해서 솔뫼라고 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 성당 및 기념관, 십자가의 길, 솔뫼 아레나(원형공연장 겸 야외성당) 등이 소나무 숲과 어울리며 공원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솔뫼는 김대건(1821~1846) 신부가 태어나 일곱 살 되던 해 박해를 피해 경기 용인시 한덕동으로 이사할 때까지 머물던 곳이다. 김대건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김제준(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았다. 19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순교기념비를 세우면서 성지로 조성됐다. 김 신부의 생가는 현장에서 발굴된 기왓조각 등을 토대로 고증을 거쳐 2004년 복원됐다. 김 신부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곳이라 ‘한국의 베들레헴’으로 불린다. 이용호(47) 솔뫼 성지 신부는 “김 신부는 스물다섯 살에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지만 그는 조선 계급사회에서 모든 이의 평등을 꿈꾼 자유사상가였다”고 말했다.

솔뫼 성지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쯤 되는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에는 내포 지역 첫 성당인 합덕성당이 있다. 이 일대가 한국 가톨릭 최대 신앙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퀴를리에 신부가 1890년대에 지은 성당이다. 김성태(41) 합덕성당 주임 신부는 “비신자들이 가뭄이 심할 때 농사 지을 마지노선인 성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6월 29일) 이전에 비 오기를 고대하면서 신자들에게 ‘배뚜리 바뚜리가 언제여?(베드로 바오로 축일이 언제인가?)’라고 말할 정도로, 가톨릭을 떼놓고 이 지역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시골성당이 배출한 신부와 수녀만 100명이 넘는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등창 등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에게 고약을 만들어 나눠주었는데 이 고약의 비법을 전수받아 ‘이명래 고약’이 만들어졌다.

인근 합덕읍 신리 성지는 단일 마을로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로 초토화됐다. 지방관리가 정조에게 올린 보고서에 ‘온통 천주학에 물이 들었습니다’는 기록이 나오는, 가톨릭 최대 신앙교우촌이었다. 제5대 조선교구장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가 살던 초가가 있고 무명 순교자 무덤도 있다. 김동겸(36) 신리 성지 신부는 “보신탕을 즐긴 한국적인 사제였던 다블뤼 주교가 조선교회의 상황과 순교 사적을 수집ㆍ정리해 파리외방전교회로 보낸 ‘다블뤼 비망기’가 샤를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의 토대가 됐다”며 “이 비망기가 없었다면 한국의 103위 시성과 124위 시복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서산의 해미 순교성지는 정사박해(1797)에서 신유박해(1801), 병인박해(1866)를 거치면서 80여년간 수천명의 무명 순교자를 낸 곳이다. 국사범을 독자 처형할 권한을 가졌던 해미읍성 무관이 공명심에 교인들을 마구 처형했기 때문이다. 백성수(64) 해미성지 신부는 “병인박해 때 1,000여명이 순교한 것으로 조정에 보고됐지만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하다”며 “어린이 유골도 많이 발굴됐다”고 말했다.

해미 성지에는 ‘진둠벙’ ‘여숫골’ ‘숲정이’ 등 무명 순교자들이 생매장된 잔혹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지명이 널려 있다. 진둠벙은 해미읍성의 처형장이 넘쳐나자 살아 있는 신자들을 ‘둠벙’(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에 밀어 넣어 죽인 곳이다. ‘죄인둠벙’으로 불리다 진둠벙으로 굳어졌다. 여숫골은 순교자들이 생매장터로 끌려 가면서 “예수, 마리아!”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사람들이 ‘여수(여우) 머리’로 잘못 알아 들은 데서 비롯됐다. 지금은 논으로 개간된 벌판이지만 병인박해 당시에는 나무가 우거져 ‘숲정이’라고 불렸다. 유해 수습 당시 뼈가 수직으로 서 있는 채 발견됐다. 신자들을 오랏줄로 묶어 곡식 타작하듯 내동댕이쳐 죽였던 돌다리 ‘자리개 돌’도 보존돼 있다.

순교자들을 심문했던 해미읍성의 동헌에서 해미 시내를 거쳐 진둠벙까지 1.5㎞ 구간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에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었던 800m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에 비견되는 순례길이기도 하다. 백 신부는 “해마다 14만명 안팎이 찾아오는데 올해는 교황이 방문하기로 해서인지 가을철 예약까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당진ㆍ서산=글ㆍ사진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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