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발은 무릎 아래로, 오른발은 허벅지 밑으로 의족을 한 중년 여성이 결승선 부근에 섰다. 결승선을 향해 달려오는 다른 참가자들에 맞춰 테이프를 끊으면서 그는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다. 휠체어를 탄 부부는 환하게 웃으며 맞잡은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린 채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한 병사는 유니폼에 희생자의 이름을 달고 완주한 뒤 결승선 부근에 엎드려 입을 맞췄다. 웃통을 벗고 달린 남성은 가슴에 ‘우리는 돌아왔다’고 썼다.
▦ 작년 4월 15일 사제폭탄의 굉음이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 인근을 뒤흔들었다. 잘려나간 팔다리가 나뒹굴고 부상자들은 피범벅이 된 채 울부짖었다. 3명이 숨지고 260명이 다쳤다. 1년 뒤인 지난 22일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서 이들은 테러로 빼앗긴 결승선을 되찾기 위해 다시 모였다. 2만7,000명 정도이던 참가자는 3만6,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관람객은 2배가 넘는 100만명이 운집했다. ‘보스턴은 강하다’는 슬로건대로 올해 보스턴 마라톤은 더 강해졌다.
▦ 1년 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의류공장들이 입주한 8층짜리 건물이 무너졌다. 확인된 사망자만 1,134명, 부상자는 2,500명이 넘는다. 아직도 300명 이상이 실종상태다. 희생자의 상당수는 10대 꽃다운 여성 근로자들이다. 원래 4층짜리 건물에 4개 층을 불법 증축한 게 원인이었다. 건물도 사무실과 쇼핑몰 용도였지만 공장으로 불법 개조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공장들은 여전히 가동 중이고, 당국의 대책이나 참회는 없다. 아직도 아들딸을 찾지 못한 유족들의 통곡소리만 들릴 뿐이다.
▦ 대한민국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생때같은 우리 아들딸들이 차디찬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다. 벌써 열흘째다. 더 이상 분노할 힘도, 터뜨릴 울분도, 쏟아낼 눈물도 없다. 내년 4월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나라는 여전히 굴러가겠지만, 못난 어른들 때문에 채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아이들한테 뭔가 해줄 말은 있어야 할 텐데…. 우리의 1년 후가 더 두렵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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