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세월호의 침몰사고는 정말 충격적인 날벼락이었다. 봄날 바닷길로 제주여행을 떠나온 많은 승객을 태운 대형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삽시간에 기울어져 바닷물에 잠겼다는 소식이었으니 “어째 이런 일이….”를 되뇌며 충격의 놀라움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곧이어, 침몰한 세월호 승객의 상당수가 구조되지 못하였고 그중 대부분이 수학여행 중인 고등학생들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는 안타까움과 희망 찾는 간절함에 절로 손 모아 빌었다. 특히, 손이 귀한 요즘 자식의 끊긴 소식에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을 떠올리며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함께 느껴보기도 하였다. 사고 발생 이후 1주일 넘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이 실종자 무사 생환의 기적을 기원하며 펼치는 노란 리본과 촛불기도에 동참하여 작은 간절한 소망을 보태었다. 하지만 고대하던 구조의 희소식 대신 희생자명단만 늘어나는 궂은 소식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비통함과 애도의 마음으로 미어졌다. 사고경위가 밝혀지고 사고 발생 이후의 상황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고, 죄책감에 고개 숙여야 하였다. 무엇보다, 가라앉는 배의 탑승객을 버려둔 채 제 살길을 찾아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후안무치한 작태에 크게 분노하였다. 돈벌이에만 열중하여 초과 화물적재와 선박 보수 및 선원인력관리 소홀 등으로 세월호의 침몰위험을 가중시켜온 해운사의 미필적 고의성에 또 한 번 분노하였다. 사고대책과 구조활동에 우왕좌왕하는 무능한 정부 당국이나 사태의 엄중함을 제대로 파악지 못하고 한심한 행동을 서슴지 않은 공직자ㆍ정치인들에 대해 격한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기도 하였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허술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번 세월호 사고로 희생당한 많은 학생을 떠올리면 피지 못한 꽃망울 같은 그네들에게 어른 된 입장에서 참으로 송구스럽고 죄스럽기만 하였다. 아마,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교차하였던 만감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근대화된 국가라면 필연적으로 위험사회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쉽게 설명해보자면, 근대화의 원동력이자 핵심성과인 과학기술과 산업시설 등이 날로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인간들의 삶에 치명적이지만 제어하기 어려운 위협요소들, 예를 들어 환경오염, 건축물 또는 교통운행 관련 대형사고, 산업재해, 핵 관련 재난사고 등을 새롭게 유발함으로써 위험사회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벡 교수는 위험을 성공한 근대가 낳은 딜레마라는 흥미로운 역설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서구국가들이 200여년에 걸쳐 이룬 근대적 산업화를 1960년대 이후 50여년 동안 경제개발과 수출입국에 매진하여 눈부신 속도로 근대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벡의 위험사회론에 따르자면 압축적인 근대화 덕분에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들의 몇 배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을 것으로 손쉽게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올해에만 지난 2월의 경주리조트 붕괴사고에 이어 이번의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것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대형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할 뿐 아니라, 그 사고들의 인명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위험수위가 서구 선진국을 현저히 상회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른 위험지표인 산업재해를 살펴봐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단연 최고 수준을 차지하고 있어 사회적 위험수위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같이 따지다 보면 우리나라가 그냥 위험사회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위험사회, 즉 초 위험사회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벡 교수는 위험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 근대화과정의 반성을 통해 그 위험요소들을 감소시켜 나가는 성찰적 근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초 위험사회에 빠져든 우리나라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지켜주기 위해서는 압축적 근대화를 통해 우리 경제와 산업 그리고 제도와 의식에 깊숙이 배어든 인명 천시의 위험요소들을 철저하게 발본색원하려는 몇 배의 뼈저린 성찰이 요구된다는 것은 아닐까?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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