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를 맞은 23일 팽목항. 이날 해뜨기 전에만 시신 25구가 수습되면서 항구는 분주했다.
구조대원들에 의해 구급차에 실린 시신을 선착장에서 30여m 떨어진 신원확인소로 운구하는 절차가 시신의 수만큼 반복됐다. 신원확인소에서 터져 나오는 가족들의 흐느낌도 그치지 않았다. 이날 전국 소방본부에서 모여든 구급차는 152대, 구조대원 570명에 달했다.
전날 설치된 컨테이너형 시신 임시안치소 6개 동에서는 검사 6명, 의사 10명, 수사관 등이 배치돼 검안, 검시 업무를 했다. 자원봉사를 나온 천주교 신자 수십명이 사망자 시신의 염을 도왔다.
이날 팽목항 날씨는 오랜만에 맑게 갰지만 줄어드는 실종자 수에 반비례해 늘어나는 사망자 수를 지켜보며 실종자 가족들은 비탄에 젖었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9반 실종 학생의 학부모는 신원확인소 천막에 ‘저는 제 둘째 자식에게 가르치렵니다. 이 나라 이 땅에 사는 한 이 무능한 정부와 관료들을 믿지 말라고요. 지금도 (실종된 자녀가)눈앞에 아른거려 눈물을 흘리려 해도 나올 눈물도 없네요. 피해자 학부모 여러분 우리 모두 다같이 이 나라 이 무능한 정부 관료들과 싸워야 합니다’라고 썼다.
진도 실내체육관에 남아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시신 인양소식과 현장 구조장면을 비추는 2개의 대형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넘도록 피붙이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실종자를 그리워하며 넋을 잃고 흐느끼다가 체육관 입구에 신원 미확인자 인상착의 벽보가 추가로 붙으면 갑자기 뛰어나가길 반복했다. 벽보에는 지난 20일 오전 7시25분 수습된 37번 남자 시신의 가족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아 사흘째 붙어 있었다.
심신이 쇠약해지고 탈진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계속 늘어나 사고 당일부터 이날까지 700여명이 체육관 안 이동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오후 6시쯤에는 50대 남성 한 명이 체육관을 뛰어다니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치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기다림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체육관을 가득 채웠던 가족 절반 정도가 장례를 치르러 떠나 빈 자리가 크게 늘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생존자 확인 소식은 들리지 않고 시신 수습 소식만 이어지자 체념한 듯 무덤덤한 표정의 가족들이 많았다. 그러나 붉게 충혈된 눈과 비장함까지 엿보이는 표정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가족들의 절박함을 드러냈다.
이날 오전 팽목항 가족지원상황실 앞에 세워진 게시판에는 전국의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실종자 가족에게 보낸 응원글 100여개가 나붙었다. 무사 귀환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리본이 그려진 노란색 메모지와 편지에 담은 학생들의 메시지는 가로 3m, 세로 1.5m 크기의 게시판 2개를 빼곡하게 채우고도 남았다. 서울 성심여중, 이천 이현고, 김천 한일여고, 충북 제천 의림여중 등 전국 각지의 학생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에게 “꼭 돌아와, 기다릴게!”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믿음의 메시지를 남겼다.
진도=하태민기자 hamong@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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