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인분의 전복죽을 굳지 않게 국자로 휘젓던 중년의 자원봉사자 여성이 천막 뒤에 잠시 숨어 물 한 모금을 넘겼다. 땡볕에 까무잡잡해진 얼굴에 맺힌 땀도 훔쳤다. “왜 뒤에서 쉬나요”라는 물음에 그는 나직하게 답했다. “속 타는 부모들이 불편해 할까 봐요. 거슬리면 안 되죠.”
세월호 침몰 사고 8일째인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실종자 가족 대기소에서 100여m 떨어져 양 옆으로 늘어선 천막 40여곳에 자원봉사자 수백명이 바삐 움직였다. 한 군인(22ㆍ병장)은 이동식 밥차 옆에서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국밥 드세요”라고 권하던 밥차 아저씨가 “저 청년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서 휴가 중에 왔는데 오늘이 복귀하는 날이래요”라고 했다. 30여m 떨어진 다른 급식소에서 ‘아이 엄마’라는 40대 여성은 묵묵히 배식만 했다. 가족 대기소 앞에선 한 대학생이 10리터 정도 담긴 물탱크를 어깨에 두르고 자갈밭에 물을 뿌렸다.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하려는 거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그냥 조용히 거들다 가겠다”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미간에 주름까지 잡힐 정도로 집중해서 한 학생 엄마의 엄지손가락에 연고를 바르던 약사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게 말문을 연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실종자 가족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위로할 수 없으리란 것을 알기에 말 한마디 못 건넸다. 나흘째 팽목항에 머무는 뮤지컬 배우 장민(28ㆍ여)씨는 물을 많이 부어 컵라면을 먹던 한 엄마를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장씨는 “한 엄마가 아들 사진을 보며 ‘왜 이렇게 빨리 갔어. 이렇게 일찍 갈 줄 몰랐잖아’라는 말을 들으니 울음을 참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기가 다 빠져 밥도 못 먹는 엄마에게 우유나 바나나를 챙겨 드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했다.
진도 토박이 주민 주모(58)씨는 8일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가족 대기실 인근 화장실을 청소했다. 주씨는 선착장에 앉아 바다를 향해 아들과 동생을 부르는 모녀를 보면서 밀대를 든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나도 자식 둔 부모예요”라며 그는 코를 훌쩍이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휴지를 갈았다. 이날 전남 광주에서 내려온 주부 김순자(63)씨는 오렌지를 정성스레 하나하나 닦았다. 김씨는 “물에 씻을 여건은 안 되지만 농약이 있을지 몰라 내 가족이 먹듯 닦는다”며 “너무 안타까워서 뭐라도 거들고 싶어 새벽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바람이 또 부네, 미치겠다.” 강용숙 대한적십자사 목포지구협의회장은 탄식했다. 강씨는 “며칠 전부터 겨우 죽을 먹기 시작한 부모들이 ‘시신이라도 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때 수습하고 싶다’며 눈물을 죽에 빠뜨렸다”며 “왜 또 바람이 모질게 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강씨는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구조된 권지연(5)양을 잠깐 돌봤다. 그는 “지연이가 인형 같은 눈으로 ‘엄마 보고 싶어’라고 또박또박 말할 땐 목이 멨다”며 “어린 애가 엄마 아빠와 오빠를 잃는 이런 참사가 정말로 벌어졌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거처인 진도실내체육관에도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급식, 구호물품 정리, 주변 청소를 돕고 있다. 가족과 함께 꼬박 밤을 새우며 가족들에게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돕고 있다. 4일 전 서울에서 온 류모(26·서울시립대 4년)씨는 “화장실 청소라도 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는 자원봉사자 1만2,337명이 거쳐갔다.
진도=하태민기자 hamong@hk.co.kr
오탈자수정옹손현성기자 h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