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4월의 봄볕을 받으며 흐르는 청계천 양 옆은 노란 리본의 물결이었다. 청계광장 초입부터 모전교까지 50m 거리 양쪽 난간에 이런 문장들을 품은 리본들이 펄럭였다. “얘들아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사랑해.” “살아남은 人 그곳의 人 모두 평안하길….” “미안해요. 꼭 기억하겠습니다.” “Avec…(함께 할게요).” “God bless those families(피해자 가족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길).” 회사원 이성은(22)씨도 열심히 무언가를 적어 묶는 중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미안해, 사랑해. 행복해”였다. 이씨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구출해내지 못한 죄책감, 어린 동생들을 보는 듯한 마음, 저 세상에서라도 행복하라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노란 리본은 기다림을 상징한다.
있을 수 없는 재난에 정부는 3류 후진국의 행태를 보였지만 우리 국민은 그냥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 온라인에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노란 리본 물결이 출렁이고, 진도에는 고교생들이 보내는 구호물품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나 단체가 조직하거나 기획하지 않은, 순전히 공동체 일원으로서 마음을 나누려는 뜻에서 퍼져나간 자생적 움직임이다.
청계천 리본 달기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리본과 펜을 제공해 이뤄지고 있지만, 시민들은 주체를 상관하진 않았다. 교복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경기 고양시 주엽고 2학년생 이규리(17), 김수민(17)양은 “끝까지 살아 돌아오라는 희망을 리본에 담았다”며 “여러 사람이 함께 바라면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한국에 도착했다는 미국인 관광객 조지 가브리치(38)씨는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라 매우 마음이 아프다”며 “피해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심정을 적었다”고 말했다.
노란 리본은 온라인에서도 출렁인다. 시민들은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SNS 프로필 사진을 이 그림으로 바꾸고 있다. 회사원 조인정(36)씨는 “염원, 추모, 분노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며 “카톡 친구들 절반 정도는 프로필 사진이 노란 리본”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고려대 중앙대 등 10여개 대학생 15명으로 구성된 동아리 ALT(Active, Autonomous, Alter Life Together)가 노란 바탕에 검은 리본을 그린 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고 적은 그림을 블로그(blog.naver.com/alterlt)에 올리면서 노란 리본은 퍼져나갔다. 같은 뜻의 다른 노란 리본 그림도 여럿 등장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전남 진도에는 구호품이 밀려들고 있다. 오기석 진도군청 기획조정실 주무관은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구호품이 30여 종류에 20만개가 넘는다”며 “진도 우체국이 마비될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또래 고교생들이 정성스레 싸 보낸 소포가 많다. 물품을 정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어느 고교 몇 학년이라고 쓰인 상자에 아이들이 먹을 과자, 화장품, 물티슈 등이 응원 메시지와 함께 담겨있다고 전한다. 진도군청은 피해자 가족들이 다 쓰지 못할 정도로 구호품이 도착하는데도 기부를 문의하는 시민들이 여전히 많아 “잠시 보류해 달라”거나 “현금으로 기부하는 방법도 있다”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계좌번호를 안내하기도 했다.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는 이들도 있다.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씨는 이날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헌정 진혼곡 ‘부디’를 음원 공유사이트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다. 윤씨는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매달렸을 절박한 순간이 떠올라 힘들었다”면서 “부디 이 음악이 마지막 가는 길에 작은 동반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밝혔다.
이런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 국민이 비극적인 참사의 목격자로서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며 “단순한 개인적인 슬픔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분노와 질책,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표하고 있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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