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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의 잔해들... 복원은 망각이 아닌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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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의 잔해들... 복원은 망각이 아닌 생명력"

입력
2014.04.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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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일본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靑野文昭·46)의 국내 첫 개인전 '환생, 쓰나미의 기억'이 오는 24일부터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 출신이기도 한 작가는 동일본대지진 피해 현장에서 수집한 흔적을 복원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4.4.23. <<문화부 기사 참조>> hanajjang@yna.co.kr/2014-04-23 17:20:34/ <저작권자 ⓒ 1980-201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일본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靑野文昭·46)의 국내 첫 개인전 '환생, 쓰나미의 기억'이 오는 24일부터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 출신이기도 한 작가는 동일본대지진 피해 현장에서 수집한 흔적을 복원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4.4.23. <<문화부 기사 참조>> hanajjang@yna.co.kr/2014-04-23 17:20:34/ <저작권자 ⓒ 1980-201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아오노 후미아키 '환생, 쓰나미의 기억'/동일본 대지진 재난지역에서 수집한 찌그러진 간판으로 만든 /2014-04-23(한국일보)
아오노 후미아키 '환생, 쓰나미의 기억'/동일본 대지진 재난지역에서 수집한 찌그러진 간판으로 만든 /2014-04-23(한국일보)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NHK 리포터의 체념 어린 보도는 당시 일본 열도 전체를 뒤덮었던 절망과 무기력, 공포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지진 발생 후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상처는 여전하다. 일본 예술계에서는 당시의 사고를 주제로 작업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자리 잡았다. 낫지 않은 상처를 함부로 건드렸다간 주목 받기 위해 남의 비극을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대지진과 관련한 예술활동은 재난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과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열리는 공연이 전부다.

그러나 동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작업해온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에게는 문제가 좀 달랐다. 그의 고향이자 현재 삶의 터전인 동북부 미야기현 센다이시는 쓰나미의 직격타를 받은 지역 중 하나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 주류 미술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의 작품 세계에만 몰두하던 그에게, 대지진은 지난 삶의 모든 기억을 쓸어간 일대 사건이었다.“지진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인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지진이 남기고 잔 잔해를 가져와 작품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지진 전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일상의 사물들, 찢어진 욕실 매트나 폐차의 본네트 등을 가져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복원하는 것이었다. 대지진 후 폐허가 된 동네를 돌며 수집한 사물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무너진 집터에 남은 장판과 타일, 도로 위에 널브러진 아스팔트 덩어리, 종잇장처럼 구겨진 간판. 작가는 이것들을 작업실로 가져와 새로운 형태로 복원하기 시작했다.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환생, 쓰나미의 기억’은 이 같은 작업의 결과물이다. 아오노 작가는 복원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과거를 잊자는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파손된 물건을 원래 상태로 돌리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복원이라는 것은 항상 복원하는 사람의 해석, 기억, 시간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한번 파괴된 물건들은 복원 당사자의 능동적인 해석을 거쳐‘지금, 바로, 이 곳’이라는 신선한 생명력을 되찾게 됩니다.”

작품 중 녹색 장판을 붙인 테이블은 처가에서 가져온 재료로 만든 것이다. 처가가 위치한 미야코현은 동네 전체가 쓸려나가다시피 해 바닥만 남은 집이 태반이었다. 그는 녹색 장판을 테이블 끄트머리에 붙인 뒤 장판의 무늬를 이어서 그렸다. 무늬는 테이블 반대편으로 갈수록 점점 희미해지다가 나중엔 아예 사라진다. 너덜너덜한 장판이 대지진의 기억을 의미한다면 작가가 이어서 그린 무늬는 현재 진행 중인‘지금 바로 이 곳’의 삶을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점점 사라져 공백이 된 부분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 여백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는 미지의 시기다. 이곳이 계속 아름다운 무늬로 채워질지, 아니면 또 다른 재난의 잔재로 덧붙여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시는 6월 1일까지 열린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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