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에서 고교생에게 해금을 가르치는 이모(38)씨는 며칠 전 학생 표정이 어두워 보여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른 말 잘 들은 학생들만 희생됐잖아요, 너무 불쌍해요.” 하소연하듯 마음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떨구는 학생 앞에서 이씨는 “선생님도 미안해”라며 같이 울어줄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사람들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원고 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한 청소년들이 겪는 심리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그래서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너희가 안전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으니 함께 이겨나가자’고 격려해줘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청소년 시기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떼를 쓰는 등 평소보다 어리게 행동하는 정서적 퇴행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아예 반항적으로 변하거나 담배, 술, 게임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평소보다 많이 먹거나 반대로 식욕이 크게 떨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면 일단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생각으로 불안, 분노, 불신 같은 감정을 청소년들이 여과 없이 드러내더라도 반박하거나 설득하기보다 일단 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어른들이 생각을 공유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과거 정신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은 성인도 이번 사고로 당시 기억이 떠오르면서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심할 경우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고, 반대로 오랫동안 허무감이나 무기력감에 빠질 수 있다. 전문의들은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믿을만한 사람과 느낌과 생각을 나누고 ▦사고 관련 소식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도록 애쓰는 게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나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세월호 사고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걱정이다. 적잖은 부모가 혹시 아이가 놀랄까 봐 대충 둘러대거나 모호하게 대답하려 한다. 이소영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러나 “어리더라도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해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게 좋다”며 “아이가 궁금해 하면 시신이나 죽음 같은 부정적인 단어의 뜻도 차분하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질문을 가로막거나 몰라도 된다고 넘어가지 말고 아이가 원하는 만큼 대화하라는 것이다.
단, 이는 부모 스스로가 상황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스스로 흥분하거나 격앙된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 교수는 “아이가 부모의 감정에서 영향을 받으면 더 동요할 수 있다”며 “책임과 과실 등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으로 아이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모 자신이 이번 사고에 감정적으로 압도돼 있다면 주변 다른 어른이나 전문의와 먼저 상의하는 게 좋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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