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거짓말 병
칼 프리드리히 뮌히하우젠 남작은 18세기 독일의 실재 인물이다. 군인이자 모험가였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과장해 떠벌리는 데 능했다. ‘말을 말뚝에 매어놓고 눈 위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눈이 녹아 말이 교회 첨탑에 매달려 있더라’, ‘전쟁이 끝난 뒤 말이 끝없이 물을 마시길래 봤더니 몸통 뒷부분이 없더라’ 등의 황당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워낙 기발하고 재미있어 여러 사람이 책으로 만들었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도 그 일종이다.
▦ 병적으로 거짓말에 매달리다 보니 스스로도 거기에 빠져 점차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뮌히하우젠 증후군’의 어원이다. ‘가장성(假裝性) 장애’라고도 한다. 그나마 선의의 거짓말 위주여서 사회적 해악은 크게 우려되지 않는다. 주위의 관심을 끌려는 동기나 반복적 거짓말에 빠져드는 구조는 이와 비슷해도, ‘히스테리성(연극성) 인격장애’는 조금 더 주의를 요한다. 욕망의 폭발이나 반사회적 공격성이 나타나는 예가 적잖아 스스로와 사회를 위협한다.
▦ 상습적 거짓말의 인격장애 가운데 가장 반사회적인 형태가 ‘리플리 증후군’이다. 미국 여류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있는 리플리씨의 주인공인 호텔종업원 톰 리플리는 친구인 재벌 아들 디키 그린리프를 죽이고 그 삶을 대신 살아간다. 그의 완전범죄는 성공하는 듯하지만 그린리프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물거품이 된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강한 성취욕을 충족하지 못해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빠진 사람에 나타나기 쉽다.
▦ 민간 잠수사를 자처한 홍가혜씨의 거짓말이 탄로났다. “해경이 민간 잠수사들의 구조 작업을 막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 했다”거나 “다른 잠수사가 생존자를 확인하고 생존자 목소리까지 들었다”는 충격적 발언은 수많은 괴담으로 갈라져 나갔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간파할 거짓말이 현장 분위기 덕분에 진실처럼 포장돼 동요와 혼란을 불렀다. 다만 방송을 타지만 않았어도 개인적 병증으로 끝났다.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빠뜨린 방송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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