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 우크라이나 등이 17일 4자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긴장완화 방안으로 도출된 제네바 합의가 당사국간 네탓 공방으로 사실상 파기 수순을 밟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외교수장은 21일에도 날카로운 설전을 이어갔고, 같은 날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중에도 친러 세력의 동부지역 분리주의 무장시위는 계속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이날 미국 언론의 사진을 증거로 러시아군의 동부지역 무력개입을 더욱 강력히 주장하는 등 우크라이나 사태 긴장완화 이행의지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관공서 등을 불법 점거한 친러 무장시위대에게 러시아가 철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제네바 합의 내용을 즉각 이행하라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브로프 장관은 “현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가 극우 민족주의세력을 통제할 힘도 없는 만큼 미국이 직접 제네바 합의 이행을 위한 행동을 보이라”고 맞대응 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내 친러 세력은 바이든 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맞춰 보란 듯이 관공서를 다시 점거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시 친러 무장 시위대는 20일 부활절 휴일로 경비가 소홀한 틈을 노려 국가보안국 지부 건물을 점거했다. 21일에는 루간스크주 주도 루간스크에 각 도시 주민 대표들이 모여 루간스크의 자치주 지위 획득과 러시아 연방 편입 등을 묻는 주민투표를 다음달 중순 갖기로 결정했다.
1박2일 일정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바이든 부통령은 “말을 멈추고 행동을 시작해야 할 때”라며 러시아에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대통령 권한대행, 아르세니 야체뉴크 총리, 정당 대표들을 차례로 만난 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도록 돕겠다”면서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부패라는 종양과 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바이든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치ㆍ개혁 작업에 5,000만달러(519억원)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백악관도 비살상 부문에서 우크라이나군 지원을 위한 800만달러 지원 계획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일 크라마토르스크시 국가보안국 건물을 친러 무장시위대가 점거할 당시 미국 CNN 방송이 찍은 사진 등을 근거로 러시아군의 동부지역 침투를 주장했다. 러시아가 2008년 그루지야(현 조지아)를 침공할 때와 2월 크림지역에 불법 침투했을 당시 러시아군 소속 병사들이 최근 슬라뱐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의 관공서 점거 때 무장 시위대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즉각 반박하고 CNN도 사진 속 인물의 일치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지만 사진 속 인물들이 워낙 흡사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일들이 제네바 합의 나흘 만에 불거졌다”며 “기대 이상 성과라던 제네바 합의가 결국 상호간 신뢰 부재 속에 쌓은 모래성이란 사실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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