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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사랑방으로… 은행 점포의 일탈

입력
2014.04.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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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영등포동 4가 A은행 한 구석에 자리잡은 VIP실. 자산가만이 아닌 일반인의 은퇴설계까지 해준다던 창구가 실제론 1억원 이상 예치한 VIP 고객 대상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2014-04-22(한국일보)
22일 서울 영등포동 4가 A은행 한 구석에 자리잡은 VIP실. 자산가만이 아닌 일반인의 은퇴설계까지 해준다던 창구가 실제론 1억원 이상 예치한 VIP 고객 대상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2014-04-22(한국일보)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동4가 A은행. 서민을 위한 전용창구가 개설돼 있고 자산가만이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의 은퇴설계까지 해준다고 이 은행이 자랑하는 거점점포다. 안에 들어서니 통장 입ㆍ출금 거래를 할 수 있는 창구와 각종 펀드 등 상품소개를 받을 수 있는 창구로 나뉘어 있는데, 번호표를 뽑고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붐비고 있다.

그런데 전체 10개 창구 중 단 한 곳에만 ‘서민금융 전담창구’라는 푯말이 걸려 있다.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해 새희망홀씨 등의 전용상품을 취급하는 전담직원과 전담창구를 별도로 배치했다는 설명과 달리 대기 순서에 따라 일반 금융업무도 진행했다. 또 일반 창구처럼 어깨 높이의 투명 칸막이로만 막혀 있어 옆 사람도 상담내용을 모두 들을 수 있는 구조였다. 서민관련 대출은 어려운 사정을 털어 놓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어떤 금융 고객보다 프라이버시가 중시돼야 하지만 이런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날 전세자금 대출을 위해 이 점포를 찾은 손모(43ㆍ여)씨는 “옆 창구의 사람들이 신경 쓰여 자세한 사정을 털어놓지 못하고 형식적 상담만 받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 점포가 자랑하는 ‘서민들 은퇴설계 전용창구’는 찾을 수도 없었다.

반면 창구 한쪽 끝에 위치한 ‘VIP실’에는 ‘PREMIER LOUNGE 미래설계’라는 간판도 달려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 담당자 직원은 “1억원 이상 예치돼 있는 VIP 고객들이 은행업무를 보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1억원 이상 예치 고객은 번호표를 뽑을 필요 없이 이 곳에서 계좌 입출금 업무에 금융상품 소개, 은퇴설계까지 받도록 해둔 것이다. 이 은행은 이달 전국 70곳의 점포에 이런 창구를 개설했다.

은행 점포가 공공성이란 사회적 책임을 벗어 던지고 부유층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면서 서민 여러 명 보다는 돈 많은 고객 한 명을 유치하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부유층 위주로 점포운영을 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은행이 생겨날 정도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점포 이윤을 높이기 위해 부유층을 주요 고객으로 삼기 위한 전략으로 점포 통폐합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은행은 190개 지점 중 56개 지점을 통폐합하기로 했으며 영업구역도 서울, 부산, 대전, 대구, 인천·경기, 광주 등 6개 도시로 한정했다.

은행 점포의 강남 쏠림 현상도 더 심화될 전망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점포통폐합 와중에도 강남지역 점포는 2개를 더 늘렸다. 이미 대부분 시중은행들은 강남3구에 서울 25개구의 평균 영업점포수보다 3배 이상 점포를 집중 배치한 상태.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은행 PB센터는 골프서비스, 갤러리, 북카페 등 다양한 형태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한 PB센터 관계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선수가 진행하는 레슨과 팬사인회를 하는 등 지역 사랑방 역할까지 병행하도록 변화하는 추세”라며 “은행에 설치된 서민창구는 대부분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설치한 구색 맞추기에 그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이런 부유층 우대 경영은 저금리 장기화로 1억원 초과 큰손 고객의 은행 이탈이 급증하는데 따른 비상대책이란 측면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현재 정기예금 중 1억원 초과~5억원 이하 계좌수는 34만9,000개로 6,000개가 감소했다. 금액으로도 2조5,390억원이 줄어들었다. 반면 1억원 이하 계좌수는 총 1,211만5,000개로 전년 말보다 26만4,000개 늘었다. 고액 예금자들의 은행 외면 현상이 심상치 않은 상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큰 수익원 역할을 했던 주택담보대출 상품 판매 등이 한계에 이르자 새 수익을 찾는 과정에서 은행들이 고객 이탈이 심한 1억원 이상 부유층을 잡는데 주력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은 영리추구만큼 공공성도 중요한 만큼 당장 이윤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서민들이 필요를 충족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ㆍ사진=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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