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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길 위의 이야기/ 법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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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길 위의 이야기/ 법 앞에서

입력
2014.04.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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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편견으로 가득한 고전이다. 유대인에 대한 천대와 욕설이 얼마나 노골적인지 악역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독한 원한에 공감이 갈 지경이다. 샤일록은 ‘법’에 호소한다. 채무자가 시일 안에 빚을 갚지 못했으니 차용증서대로 그의 살점 1파운드를 떼어갈 권리를 ‘법’으로 인정해 달라. 우여곡절 끝에 이런 판결이 내려진다. 살점은 떼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안 된다고. 흔히 악당의 흉계를 물리친 현명하고 재치 있는 반전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샤일록은 겁을 먹고 물러선다. 하지만 법의 공세는 그치지 않는다. 어쨌건 기독교인의 생명을 위협했으니, 너의 전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법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본다. 작품 속 선악구도를 지우고 보면 유대인 샤일록은 베니스 사회의 소수자다. 그가 굳이 법 앞에서 제 권리를 행사하려 한 건 최하층에 속한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은 차갑고 객관적이니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법에 의지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동등하지 않다. 법은 기독교인에 의해, 기독교인을 위해, 해석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듯 그는 법의 명으로 재산을 빼앗긴다. 해피엔딩의 쾌활함 속에 씁쓸함이 스쳐간다. 공정하고 무표정한 가면 아래 힘 센 편에 서는 건,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는 법의 보편적 속성인 걸까. 법은 차라리 편견의 다른 이름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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