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호는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처녀항해를 시작했다. 길이 270m, 폭 28m, 높이 32m, 무게 약 4만 6,000톤인 타이타닉은 당시 가장 크고 안전한 선박이라는 평을 들었다. 선체가 16개의 격실로 나뉘어, 어느 한 곳이 뚫려 침수되더라도 부력을 잃지 않게 설계되었다. 심지어 ‘신도 이 배를 침몰시킬 수 없다’라는 광고 문구까지 나돌았다.
아직 이른 봄이었던 당시 북대서양에는 빙산이 떠다녔다. 다른 선박으로부터 빙산을 조심하라고 연락받았으나 승무원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4월 14일 늦은 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빙산에 충돌한 타이타닉호는 2시간 40분 만에 수심 3,700m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배에 타고 있던 2,224명 중 710명이 구조되고, 나머지 1,514명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구명보트의 정원이 1,178명으로 승객 숫자보다 적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승객을 구조하고 끝까지 남아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사고 2년 후인 1914년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74년 국제해사기구(IMO)에서 개정한 것이 현재 유효하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안전협약이 만들어진 지 100년 후인 2014년 4월 16일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진도 인근 해역에서 일어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더라도, 해상 안전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논의가 필요하다. 물속에서는 호흡이 불가능하고 체온을 쉽게 빼앗기므로, 바다에서 조난당하면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인명을 구하려면 1분 1초를 다투어야 한다. 그러나 사고 현장까지 가려면 마음이 급해도 배 속도의 한계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구조대가 현장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바다에서 사고가 나면 수습하기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파도가 높으면 사고 현장에 가는 것조차 힘들다. 현장에 도착하더라도 조류가 빠르고, 가시거리가 짧으면 구조대 활동이 여의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수심이 깊으면 심해 유ㆍ무인잠수정 등 특수 장비가 없으면 구조가 불가능하다. 이번 사고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주개발보다 해양과학기술개발을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담기는 어렵다. 사고 대응책 수립보다 더 좋은 방법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선박 침몰로 인한 대형 인명사고는 거의 예외 없이 인간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조사 결과가 나와야 정확히 알겠지만, 정황으로 판단컨대 이번 사고도 인재다. 자동차도 급하게 회전하면 구르듯이, 배도 급회전하면 전복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속도를 내기 위해 밸러스트수를 덜 채웠거나, 기준을 초과하는 화물을 허술하게 적재했거나, 정원보다 많은 승객을 태웠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밸러스트수가 적으면 무게중심이 올라가 배가 훨씬 불안정해진다. 화물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배가 기울 때 짐이 한쪽으로 쏠려 전복 위험이 더 커진다. 구명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도 안전 불감증과 관리 소홀 때문이다.
요즘은 선박에 자동항법장치가 있어 배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간다. 레이더나 수중음향탐지기를 이용해 항로 상의 다른 선박이나 수중 암초 등 해저지형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을 위한 좋은 장비가 있더라도,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사고란 뜻하지 않게 발생한다. 타이타닉 이후 100년이 지나 장비는 좋아졌는데,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타이타닉호 선장이 승객들을 마지막까지 구조하고 자신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가슴이 더 아프다. 세월호의 선장이 사고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신속한 위기대응에 나섰다면 소중한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U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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