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로 숨지거나 생사조차 알 길 없는 이들의 가족이 비통을 가누지 못하는 사이, 그 끔찍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 나온 이들도 남 모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른바 ‘생존자 증후군(survivor’s syndrome)이다.
생존자 증후군 또는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은 천재지변이나 대형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이 겪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1개월 이상 지속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간주된다.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인솔책임자였던 강민규(52) 교감도 극심한 자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존자뿐 아니라 그 가족, 구조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해군ㆍ해경들도 이를 겪을 수 있다.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 당시 살아남은 5세 아이가 “나 때문에 친구가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는 학계 보고가 있을 정도로 죄책감은 재난 생존자들에게 보편적인 고통이다.
온 나라를 비탄에 빠뜨린 이 참극이 더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살아남은 이들의 숨은 고통을 우리 모두가 헤아리고 보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생존자 증후군의 증상은 네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꿈 등을 통해 재해 당시의 상황이 반복적으로 재현(회상)되거나 사고와 관련된 장소, 사람 등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회피), 경각심이 높아져 잠을 잘 못 자거나 짜증을 내기도 하며(과각성), 희생당한 동료나 친지들에 대해 죄책감, 자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안현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회 회장)는 “생존자들이 혼자 빠져 나오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살려 달라’는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본 기억이 슬로 모션처럼 뇌리에 남게 된다”며 “실제 사고 현장은 도움을 줄 여건이 아니었는데도 살아 남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상우 연세유앤김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살아 남았을 때의 안도감은 잠시뿐이고 친구와 동료들의 시신이 속속 발견되는 상황은 생존자들에게 ‘생지옥’과 같을 것”이라며 “초기부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상담과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월호에서 탈출한 단원고 학생과 교사 70여명은 사고 당일인 16일 밤부터 고려대 안산병원 등에 입원해 전문가 상담을 받았는데, 상당수가 생존자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8일 강 교감의 비보가 전해진 후 생존한 교사 한 명은 ‘같은 병원에서 학생, 부모님과 마주치는 것이 고통스럽다’며 병원을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생존 교사는 처음부터 다른 지역 병원에 입원했다. 이들은 제자와 동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들의 상태도 심각하다. 고영훈 안산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수면장애를 겪거나 수면 도중 발버둥치는 학생이 많다”며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고 이유 없이 두통이나 복통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생존자 어머니는 “잠잘 때 편안하게 자는 애들이 없다. 다들 상태가 너무 안 좋다. 몇 끼를 거른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고 직후엔 괜찮아 보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연재해보다 인재로 인한 재난에서 생존한 경우 희생자들에 대해 잘못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며 “극한 상황에서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고맙고 훌륭한 일이라고 느끼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안현의 교수도 “재난 현장에서의 탈출은 엄청난 신체적ㆍ정신적 집중을 해야 가능한 일이므로 자신의 몸만 빠져 나온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격려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게 하려면 무엇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생존자들이 죄책감, 우울감 등 부정적인 감정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생존자가 사고와 관련해 자책할 경우 왜 그런지를 캐묻지 말고 그 마음의 주파수에 맞춰 말을 잘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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