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남미 문학의 우수성을 알린 콜롬비아 출신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7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외신은 고인이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마르케스는 지난달 말 폐렴과 요로 감염증 등의 증세로 멕시코 국립의료과학연구소에 입원 치료한 뒤 퇴원해 자택에서 요양했으나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지 언론은 고인이 지난 15년간 림프암으로 투병하면서 암세포가 전이돼 합병을 불러온 것으로 추정했다. 1960년대 초반부터 멕시코에 거주한 마르케스는 생일인 지난달 6일 자택을 방문한 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가장 위대한 콜롬비아인이었던 고인의 죽음에 천 년의 고독과 슬픔이 느껴진다”며 사흘간의 국장과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세계는 위대한 선견지명을 지닌 작가 한 명을 잃었다”며 “그의 작품은 세대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변함없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 작가 이언 매큐언은 “마르케스의 작품은 셰익스피어 작품만큼 뛰어나다”고 칭송했고 칠레 작가 세풀베다는 “20세기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치켜세웠다.
마르케스는 17세기 세르반테스 이후 가장 뛰어난 라틴 문학의 거장으로 꼽혀 왔으며 남미의 역사성과 토착 신화, 민담, 무의식, 기후, 지역성을 소설적 상상력과 결합해 마술적 사실주의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로 일컬어진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문학 세계에 남미 문학의 붐을 일으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인 백년 동안의 고독은 1967년 처음 출간된 이후 세계 37개 언어로 번역돼 3,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 북부 아라카타카에서 11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바나나 농장을 독점하기 위해 미국 기업이 진출했던 아라카타카는 농장 노동자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마을이다. 부모가 직업 때문에 집을 떠나 살아 그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던 외조부모 아래서 자라며 영향을 받았다. 콜롬비아 내전인 천일전쟁에 참전했던 장교인 외할아버지는 정치와 역사,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마르케스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초자연적인 일을 현실의 일부로 생각했던 외할머니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씨앗을 심어줬다. 훗날 그는 “현실에 대한 마술ㆍ미신ㆍ초자연적 관점을 준 원천 같은 분”이라고 외할머니에 대해 말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첫 직장은 신문사였다. 1955년 야당 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에 해군 구축함 침몰사건에서 살아 남은 선원의 기사를 연재해 파장을 일으켰다. 좌파적 시각으로 정부 비판 기사를 쏟아낸 그는 신변의 위협을 받던 중 유럽 특파원 발령을 받고 파리로 떠난 뒤 유럽과 멕시코, 베네수엘라를 전전하며 살았다.
첫 소설 낙엽은 7년간 출판사를 찾지 못한 채 서랍 속에서 잠들다 1955년 출간됐다.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라는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일곱 세대에 이르는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으로 마르케스가 조부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고향에서 바라본 노예와 노동자의 삶 등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미국 작가 윌리엄 케네디는 “성서의 창세기 이후 모든 인류가 읽어야 할 첫 번째 문학 서적”이라고 이 소설을 극찬했다. 마르케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이라는 제목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을 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잔혹한 역사를 언급하며 “한림원의 주의를 끌만했던 것은 단지 문학적인 표현양식만이 아니라 가공할 만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쿠바혁명을 지지해 쿠바 통신사 프렌자 라티나의 통신원으로도 활동했던 마르케스는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절친한 사이였다. 1997년 콜롬비아 정부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소설 납치일기로 다시 한번 국외 망명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은 건강 문제로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가보’(Gabo)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생전에 장편 6권, 중편 4권, 단편집 6권, 논픽션 7권 등을 남겼다. 소설 중 독재자의 내면을 파헤친 족장의 가을(1975), 정치인의 고독을 다룬 미로 속의 장군(1989), 부모의 사랑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 노인과 젊은 여성의 사랑을 그린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4) 등이 특히 많이 알려져 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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