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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최대 항일의병 정신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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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최대 항일의병 정신 잊지 말기를"

입력
2014.04.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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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최대 항일의병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경북 영천시 자양면 거동사(巨洞寺) 주지 혜신(53ㆍ사진) 스님은 20일 ‘산남의진(山南義陣) 순국선열추모제’를 앞두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산남의진은 일제 침탈에 항거해 영천을 중심으로 포항, 청송, 영덕 등 경북 중부 및 동해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진영이다. 고종의 밀지를 받은 1906년 3월부터 3대 대장 최세윤이 체포된 1908년 8월까지 활동했으며, 거동사는 산남의진 4차 결성지로 지난해 초 현충시설로 지정돼 산남의진 순국선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혜신 스님은 “구한말 고종황제가 일본의 압력에도 불구, 끝까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활동 중 하나가 산남의진”이라며 “1908년 산남의진이 순국한 부자(父子) 의병대장의 위령제를 지내고 새 대장을 추대한 곳이 거동사”라고 말했다.

거동사에 따르면 고종은 을사늑약 후 당시 태의원시종관(太醫院侍從官)으로 있던 동엄(東嚴) 정환직 선생을 불러 ‘의병을 모아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구해달라’는 요지의 밀지를 내린다. 동암 선생의 아들 정용기가 영천에서 산남의진을 첫 결성, 대장으로 의병활동을 이끈 후 다시 동암과 포항 흥해 출신의 최세윤으로 맥이 이어지면서 구한말 최대의 항일의병진을 갖추게 됐다.

“고종황제의 특명으로 결성된 산남의진은 중앙정부와 끊임없이 소통한 의병부대”라는 혜신 스님은 “국권회복과 직결된 이 의병활동은 1910년 경술국치 후 대한광복회의 결성과 서울 진공작전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 서훈을 봐도 정환직 대장은 대통령장, 14명은 독립장, 그 외 애국장과 애족장을 받은 인물도 87명에 이를 정도로 산남의진의 활약은 대단했다는 것이다.

혜신 스님은 “20일 오전 10시 거동사 경내에서 열리는 추모제에는 고종황제 손자인 황손 이석 선생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천=김성웅기자 ks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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