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엔 틈이 있다. ‘나’는 ‘너’를 알기 어렵고 ‘그’에 이르면 자욱한 안개와 같다.
정호기(征虎記)란 사냥 이야기를 읽었다. 일제강점기 한국 호랑이 사냥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담긴 책이다. 1917년 11월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정호군을 결성하여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여덟 개 반으로 나눈 정호군엔 조선인이 20명이고 일본인이 3명이다. 지리에 밝고 사냥 경험이 풍부한 조선인 명포수들을 앞세운 것이다. 다다사부로는 이때 잡은 호랑이 두 마리를 일본 도쿄 제국호텔로 옮겨 시식회까지 열었다. 위험한 호랑이 사냥엔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면서도, 자랑스럽게 그 여정을 기록하고 또 조선인 포수들을 들러리로 세워 총을 들고 많은 사진을 찍었다. 다다사부로에게 호랑이 사냥은 허풍 가득한 무용담의 소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호랑이, 표범, 늑대 등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맹수를 없애겠다고 천명한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으로 인해 한국 호랑이와 한국 표범의 수는 격감했다. 해방 후 남한에선 거의 자취를 감췄다.
우리는 맹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점점 잊고 있다. 어린이들도 호랑이와 표범을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동물로 여기고, 골골마다 대형육식동물이 살았음을 알지 못한다. 역사를 검토해보면, 호랑이 없이 지내는 해방 이후가 특이한 경우다. 나머지 오랜 세월을 우리는 호랑이가 산중호걸로 군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물론 두려웠겠지만 두려움도 삶의 일부였다. 지금 우리 마을 앞산이나 뒷산으로 호랑이나 표범이 돌아온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 산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로부터 멀어지고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역사 속 인물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처음 떠오르는 단어도 틈이다. 가령 고려 말 승려 신돈에 관한 소설을 짓는다면, 공화국의 국민인 나와 왕조의 백성인 그, 21세기의 나와 14세기의 그, 서울에 사는 나와 개성에서 사는 그의 틈은 깊이도 넓이도 제각각이다. 작가는 이 틈을 최대한 메우기 위해 읽고 걷고 따져 듣는다. 그러나 결코 나는 신돈이 아니며 신돈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틈 앞에서 스스로 묻곤 한다. 이와 같은 시도는 부질없는 글 장난이 아닐까.
경쟁이 치열한 사회일수록 틈은 허점이며 약함이며 패배나 죽음의 징후로 간주된다. 어렸을 때 거듭 읽은 동화 중에 네덜란드 소년이 제방의 틈을 발견하고 그 구멍에 팔을 넣어 막는 이야기가 있었다. 최근에 확인해보니 그것은 미국의 동화작가 메리 맵스 닷지의 한스 브링커 또는 은빛 스케이트에 실려 있는 일화였다. 네덜란드 소년이 마을을 구한 이야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틈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제방에 균열이 생겨 구멍이 나면, 그곳으로 물이 흘러넘쳐 마을을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지만, 어린 독자들에게 틈은 나쁘고 위험하단 생각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틈이 희망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은 감옥 창문 틈에 자라난 풀을 발견하고 짧은 시 한 편을 지었다. “우리 방 창문 턱에 / 개미가 물어다 놓았는지 / 풀씨 한 알 / 싹이 나더니 / 어느새 / 한 뼘도 넘는 / 키를 흔들며 / 우리들을 / 가르치고 있습니다.” 틈이 없다면 풀씨도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우지 못했으리라. 이때 틈은 꽉 막힌 어둡고 단단한 절망의 시간을 버티고 끝내 넘어서도록 만드는 숨 쉴 공간이다. 가르침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너와 나 사이에 틈을 완전히 없앨 순 없지만, 그 틈에 풀씨 하나 키울 순 있지 않을까. 삶을 다룬 다양한 이야기는 풀씨가 피워 올린 색색 가지 꽃잎일 것이다. 상식 혹은 편의 혹은 이익을 앞세워, 있는 틈을 무시하고 지금 여기의 나에게로 모든 생각과 행동을 환원시키는 것은 오만이다. 더운 손가락을 틈에 끼우고, 고통을 이겨냈던 많은 이들의 간절한 순간을 더듬고 느끼고 상상하며 침묵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자. 정성과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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