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전체 승객 구조율 38%, 단원고 학생 구조율 23%, 선원 구조율 60%….
오랜 단체생활 속에서 어른들의 말을 따르는데 익숙한 고교생들은 “기다리십시오. 구조하러 옵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또 믿었다. 헬기 소리가 들리고, 멀리 해경 보트가 보이자 희망을 갖기도 했다.
16일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생존자들은 함께 구조를 기다리다 끝내 희생된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을 눈물과 함께 전했다. 생존자들은 안내방송을 믿지 않고 어떻게든 박차고 나왔던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구조된 그룹에 속했던 A씨는 탈출 당시 선박 3층 안내데스크 근처에 있었다. 그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배가 기울어지자 젊은 직원이 안내데스크에서 마이크로‘움직이면 힘드니까 움직이지 마라, 기다리십시오, 구조하러 옵니다’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듣고 (아이들이) 전혀 움직이지 못한 거야”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학생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는 구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급된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여학생에게 넘기기도 했다.
헬리콥터가 뜨고 해경 보트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며 희망에 찼던 것도 잠시, 배가 기울며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A씨는 “처음 보는 화물기사가 ‘형님 나가야 합니다’라고 해서 죽기살기로 나왔다”며 “그 기사가 여러 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배는 10분 만에 급격히 기울었다. A씨와 함께 기다리던 학생들은 대부분 탈출하지 못했다. 그는 “기운 있는 애들 정도가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3층을 빠져올 때 보니 이미 기관실 직원 10명 정도가 빠져 나온 상태였다고 했다. A씨는 “기관실에는 (탈출하라고)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승객들에게는 그런 멘트 하나도 없었다”고 전했다.
A씨와 함께 마지막에 구조된 김관수(48ㆍ서울 송파구)씨는 “배가 45도 기울어져 선실에서 복도로 나가니까 ‘움직이지 마라, 기다려라’는 방송이 나왔는데 10분쯤 있으니 배가 점점 기울어져 안되겠다 싶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학생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만 우리같이 나이 있는 사람들은 ‘이건 아니다’라고 판단해 튀어나왔다”고 말했다.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홀에 있던 학생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김성묵(37)씨는 “홀에 보이는 아이들만 30,40명이었다. 그 아이들을 보고도 구할 수 없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씨는 “그 아이들은 난간 잡을 데도 없고 배가 많이 기울어진 상태라 바닥을 기어 올라와야 하는데 미끄러워 잡을 데가 없었다”며 “소화기 호스를 늘어뜨려 끌어당겼는데 몇 명 구하지 못했다”며 “아이들이 힘이 부족해서인지 잡고 있지를 못했다”고 전했다. 김씨가 구조선으로 옮겨 타자마자 배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는 “빨리 탈출하라는 방송이 없어서 그게 안타깝다”며 “구명조끼도 누가 입으라고 해서 입은 게 아니라 아이들끼리 나눠 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먼저 내보낸 뒤 숨진 승무원 박지영(22)씨 등 일부를 제외하고 선원들은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김씨 등 승객들이 소화기 호스나 찢어 묶은 커튼을 이용해 일부라도 학생들을 구했다. 남은 대다수의 학생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구명조끼를 양보하는 등 서로를 의지하며 마지막을 함께했다.
진도=하태민기자 ham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