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8시 40분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전남 진도 앞 해상을 지나던 여객선 세월호는 왼쪽으로 급선회했다. 목적지인 제주항 도착을 1시간 여 앞두고 선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배는 순식간에 왼쪽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침몰까지 1시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당시 승객들은 1, 2층 화물칸을 제외한 3~5층에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 안신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이들을 인솔하던 교사 15명(여행사 안내자 1명 포함), 일반 탑승객 89명, 선원 30명은 갑작스럽게 닥친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들은 아침식사 후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세월호는 선체 왼쪽 바닥이 암초에 걸리면서 뚫린 구멍으로 물이 차올라 옆구리를 드러내며 좌초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갑 기념으로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 16명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가던 차은옥(60ㆍ여)씨는 "바다가 보이는 2층 로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자동차가 급커브를 도는 것처럼 갑자기 배가 급회전을 했다"고 말했다. 화물차 운전기사 허웅(52)씨는 "충격과 동시에 승객들이 어떤 행동을 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배가 기울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복도 왼편 객실이 수면 아래로 잠기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배가 급격히 기울며 왼쪽 벽면으로 물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왼쪽 벽면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던 승객들은 경사 60도의 바닥을 기어 올라 문에 닿았지만, 육중한 철문을 위로 열어 젖혀야 하는 상황이어서 탈출이 쉽지 않았다. 여기서 생사가 갈린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단원고 수학 교사 김소형(29ㆍ여)씨는 "안내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방에 물이 차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온 힘을 다해 겨우 복도로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교사는 "화장실에서 양치하다가 갇혔다. 몸으로 문에 부딪혀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며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숨을 쉬었다. 박호진(단원고2)군은 "4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방에 있던 아이들은 나오기가 어려웠다"고 말했고, 한 학생은 "문을 열지 못해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배가 30~40분만에 90도 가까이 기울면서 복도는 아비규환이 됐다. 선미가 가라앉으면서 선수 쪽 로비로 갈 수가 없었다. 고영창(단원고2)군은 "물건들이 쏟아지고 애들이 미끄러지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반듯하게 일어설 수도, 기어 나오기도 힘든 상황에서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잡아 뜯으면서 (선수 쪽) 로비로 나왔다"고 말했다. 허웅씨는 "복도 한쪽에 몰려 있는 학생들을 위해 소방 호스를 내려줬다. 배 구조를 잘 모르는 학생들 다수가 출구를 찾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간신히 갑판이나 난간으로 나온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조금만 지체했다가는 배와 함께 가라앉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고 발생 1시간 30분 가량 지나면서 물 위로 나온 부분은 세월호의 선수 우측 난간밖에 없었다. 바닥을 기어올라 헬기와 해경 보트로 구조된 20여명을 끝으로 배는 끝내 가라앉았다.
허웅씨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승무원들은) '움직이지 말고 현 위치에서 가만히 있으라'고만 서너 차례 방송했다. 당국은 최첨단 구조작업을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구조인력 자체가 적었다"며 세월호 승무원의 무책임과 구조 당국의 늑장 대응을 질타했다.
진도=하태민기자 hamong@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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