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시위 불댕긴 '中개혁 상징'… 내년 탄생100년 복권 기대시위 미온 대응 이유로 실각… 89년 숨지자 톈안먼 시위 발생최대 정치세력인 공청단 창설… 유골도 공청단 도시에 묻혀후진타오, 옛 저택 방문… 추모식에 정재계 인사 몰려전기 출간·좌담회 등 러시… 트위터 검색 제한도 풀려
"후야오방(胡耀邦) 동지가 떠난 지는 25년이 지났지만 그의 개혁 정신과 청렴한 기풍은 인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15일 오전 9시30분 중국 장시(江西)성 궁칭청(共靑城)시 푸화산(富華山) 동쪽에 자리한 야오방 능원. 1982~86년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역임했던 후야오방이 잠들어 있는 이 곳에선 이날 25주기를 추모하는 참배객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87년 1월 민주화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이유로 실각해 89년 4월 15일 정치국 회의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며칠 만에 숨을 거뒀다.
그를 애도하기 위해 베이징(北京)대와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몰려든 학생, 시민들은 정치개혁과 언론자유, 법치실현 등을 외치다가 결국 89년 6월 4일 인민해방군의 탱크와 총에 무력 진압됐다. 후 전 총서기는 이후 중국 정치개혁과 민주화의 상징이 됐고 그 때문에 그 동안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였다. 이날 추모식의 바뀐 풍경은 그와 톈안먼 사건에 대한 재평가를 중국 내에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는 현실을 웅변하는 듯했다.
능원 정문을 들어서 그의 73년 삶을 상징하는 73개의 계단을 따라 잔디밭 야산을 오르자 길이 10m, 높이 4.5m의 직각 삼각형 묘비가 참배객을 맞았다. 묘비 앞은 이미 그를 추모하는 화환 100여개로 가득 했다. 화강석 묘비에는 차례로 새겨진 후 전 총서기의 얼굴과 중국소년선봉대,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국공산당 휘장이 그의 한평생을 대변했다.
후 전 총서기는 사실상 소년선봉대와 공청단의 창설자다. 공청단은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을 비롯, 지금도 중국공산당의 최대 정치 세력 중 하나다. 후야오방을 정치적 스승으로 삼고 있는 후 전 주석이 지난 11일 후난(湖南)성 류양(瀏陽)시 중허(中和)진 창팡(蒼坊)촌의 후 전 총서기 옛집을 찾은 것도 이런 연유다. 후 주석은 93년 4월 야오방 능원을 찾아 참배하고 통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야오방의 유골이 고향도 아닌 이곳에 묻힌 곳도 공청단과 관련이 깊다. 궁칭청은 원래 황무지였으나 공청단의 활동으로 개발된 도시다. 후야오방은 이곳을 3차례나 찾아 격려했고 궁칭청(공청단의 도시란 뜻)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후 전 총서기가 숨진 뒤 가족들이 그를 베이징(北京)에서 화장해 이곳으로 이장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후 전 총서기의 3남인 후더화(胡德華) 전 중국과학원 소프트웨어센터 소장 등 가족들과 완사오펀(萬紹芬) 전 장시성 서기, 장중핑(將仲平) 전 장시성 부성장 등이 참석했다. 또 마스샤(馬世俠) 다롄(大連)시 정협 부주석, 천바오핑(陣保平) 궁칭청시 정협 부주석, 정성타오(鄭勝濤) 선리(神力)그룹 회장, 리젠(李堅) 원저우(溫州)상공회의소 회장 등도 참배, 후 전 총서기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관가에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84년 중국 최초의 사기업이자 외자 합작기업이 된 광차이(光彩)실업의 장웨이(姜維) 회장은 "후야오방은 개혁 개방과 경제 성장의 기초를 마련한 은인"이라며 "그를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선 후 전 총서기 복권 움직임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저장(浙江)성 타이저우(臺州) 다천다오(大陳島)에선 후 전 총서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어 그의 옛집도 국가급 중점 보호문화재로 지정됐다. 공산당 간부양성기관인 중앙당교에선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후 전 총서기 발언을 기념하는 좌담회도 열었고 인민일보 출판사는 그의 전기를 내기도 했다.
후 전 총서기 주변에선 탄생 100년이 되는 내년엔 공식 복권이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한 소식통은 "탄생 10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준비되고 있다"며 "베이징 인민대회당과 고향인 류양시, 묘지가 있는 궁칭청시 등에서 기념 좌담회와 토론회, 100주년 기념행사, 추모집 발간 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후 전 총서기의 사실상 부활과 함께 그가 생전 외쳤던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민망(人民網)은 이날 후야오방 25주기를 맞아 "30여년에 걸친 개혁개방으로 중국 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인민들의 생활도 나아진 게 사실"이지만 "정치개혁은 여전히 미흡해 극좌 사상과 봉건 사상이 여전히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글을 실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는 "모든 인민들이 헌법의 보호 아래 최대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등 후 전 총서기 발언과 지지, 추모글이 잇따랐다. 웨이보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후야오방'을 검색하면 관련 법률에 의거해 결과를 나타낼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날은 마침내 그 제한마저 풀렸다.
궁칭청=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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