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손으로 성공 스토리1973년 쌍용양회 입사재무책임자로 탁월한 능력IMF 당시 경영난 닥치자 사재 털어 회사 인수● 거침없는 질주조선·해운·건설 등 인수몸집 부풀리며 글로벌 진출전경련 회장단까지 올라● 글로벌 금융위기 '타격'해운·조선업 연쇄적 위축유동성 위기 끝내 못 버텨
샐러리맨의 신화는 결국 신기루였다. 회사를 인수한지 10여년 만에 재계서열 13위까지 키웠고, 자신은 다른 재벌오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총수반열'에 올랐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순식간에 그룹은 공중 분해됐고, 본인은 총수지위는 물론 자유까지 상실하게 됐다. 15일 새벽 3,000억원 대 배임횡령혐의로 강덕수(64) 전 회장이 구속됨에 따라, 일장춘몽과도 같았던 그의 10년 드라마는 이렇게 비극으로 결말짓게 됐다.
그의 출발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1973년 쌍용그룹에 입사한 그는 상고(동대문상고) 출신답게 돈의 흐름파악과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쌍용중공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엔 자신의 개인자산을 담보로 운영자금을 마련할 만큼, 회사를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쌍용그룹이 해체되자, 2001년 그는 회사를 아예 사들였다. 사재 20억 원에다 외부펀드를 끌어들여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그는 사명을 STX로 바꿨다. '강덕수 신화'의 시작이었다.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거침없는 질주'였다.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에 이어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를 사들였고 2004년에는 STX중공업을 설립했다. 이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을 인수하고 건설사(STX건설)를 세우는 등 거침없이 몸집을 불려나갔다. 엔진-조선-해운으로 이어지는 사업포트폴리오를 통해 수직계열화도 완성했다.
M&A는 해외로도 이어졌다. 2007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를 인수해 사명을 STX유럽으로 변경했고, 이듬해엔 중국 다롄에 STX조선 생산기지도 준공했다. 아프리카 가나에 20만호 규모의 초대형 주택사업권도 따냈다. 특히 이명박정부 시절엔 정권실세와 친분이 깊다는 소문까지 겹치면서 STX그룹은 더욱 승승장구했다. 설립 당시 5,000억원 수준에 머물렀던 매출액은 2012년 18조8,000억원 규모로 불어났고, 2009년엔 전경련 회장단에 선출됨으로써 '재벌오너'로서 사실상 재계의 공인까지 받게 됐다.
비상을 계속하던 날개를 꺾은 것은 2008년 리먼사태.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기가 불황에 빠지자 물동량이 급감한 해운이 침체에 빠졌고, 연쇄적으로 조선과 중공업까지 휘청거렸다. 업계 관계자는 "수직계열화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사업구조이지만 하나가 침체에 빠지면 다른 계열사들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STX가 바로 그런 케이스"라고 말했다.
게다다 M&A로 몸집을 불려온 탓에 재무구조가 좋을 리 없었다. STX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결국 작년 상반기부터 주력 계열사들은 일제히 법정관리 또는 채권단 자율협약으로 내몰리면서 그룹 자체가 해체되고 말았다. 전형적인 '승자의 저주'였다. 강 전 회장은 모든 경영권과 지분을 내놓은 채 하나 남은 ㈜STX를 통해 재기를 모색했지만, 결국 이번 구속으로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 회사를 10년 만에 굴지의 재벌그룹으로 키운 그였지만, 몰락하는 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샐러리맨의 영웅'에서 '초라한 범법자'로 무너져버린 그에 대해 일각에선 동정론도 나온다. STX그룹에 몸을 담았던 한 관계자는 "지난 10여년간 평범한 샐러리맨들의 롤 모델로서 꿈과 희망을 준 것은 사실이며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 성장과 고용창출에 기여한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관계자는 "재벌가문 출신도 아닌데다 상고를 나온 강 회장은 평소 '나는 항상 비주류로 살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성공했다면 좋은 본보기가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과를 떠나 '무리한 확장이 낳은 필연적 결말'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한편 강 전 회장의 지분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STX는 그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경영정상화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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