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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의 계단, 소련 그리고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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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의 계단, 소련 그리고 러시아

입력
2014.04.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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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종종 꼽혔다. 세계 영화사의 대전환이라는 평가도 따랐다. 영화학도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로 추천되곤 했다. 옛 소련에서 만들어진 '전함 포템킨'(1925)은 고전 또는 명작이라는 짧은 수식만으로는 부족한 영화로 여겨졌다.

이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자 영화이론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1898~1948)은 뼛속 깊이 사회주의자였다. 몽타쥬이론으로 집약됐던 그의 영화이론은 변증법에 기반했다. 피사체(정)와 카메라(반)가 충돌을 일으켜 장면(합)을 만들어낸다는 게 몽타쥬이론의 출발이다. 한 장면(정)과 또 다른 장면(반)이 부딪혀 관객의 마음 속에 전혀 다른 이미지(합)를 만들어낸다고 그는 주장했다. 빵을 찍은 장면에 이어 무표정한 소년의 얼굴이 이어지면 관객은 배고픔을 연상케 된다는 식이었다. 에이젠슈타인은 '전함 포템킨'에 그의 이론을 본격 적용했고, 이 영화는 당대와 후대 감독들에게 영화 교과서가 됐다. 옛 소련은 사회주의 혁명을 설파하는 영화의 표본으로 내세웠다.

'전함 포템킨'은 혁명에 대한 영화다. 혁명의 공기가 러시아 전체로 퍼져나가던 1905년의 실화를 밑그림 삼았다. 구더기가 들끓는 고기를 강제로 먹으라는 지휘관의 횡포에 대항하는 포템킨호 수병들의 반란이 영화의 가로 축이다. 세로 축은 포템킨호 반란에 동조했던 오데사 시민들이 학살되는 사건이다. 두 축이 엇갈리며 관객들의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오데사의 계단'이라 일컬어지는 장면이 이 영화를 상징하곤 한다. 항구에 접한 계단에서 시민들은 포템킨호 선원들에게 성원을 보내는데 진압군이 나타난다. 가지런히 정렬한 채 이동하며 총을 쏘는 군인들과 공포에 질렸거나 총탄에 맞은 시민의 얼굴이 교차한다. 비극은 엄마의 손을 떠난 유모차가 계단아래로 향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유모차 안 아기가 어찌될지 관객들은 가슴 졸인다.

'오데사의 계단' 장면은 '언터처블'(1987) 등 많은 영화에서 재창조됐다. 특히 위기에 놓인 유모차 설정은 여러 영화들이 '전함 포템킨'에 빚지게 됐다. '전함 포템킨'으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는 영화팬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오데사의 계단'은 영화의 명성에 기대 뒷날 '포템킨 계단'으로 명명됐다.

오데사 이름이 요즘 뉴스에 오르내린다. 친러시아계 주민들이 러시아로의 귀속을 요구하며 옛 소련 군복을 입고 행진하는 모습이 최근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외치며 러시아와 주변 여러 나라들이 결합해 개국했던 옛 소련의 상징이 21세기 러시아 패권주의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듯하다.

영국의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1952년부터 10년마다 역대 최고 영화 10편을 발표해왔다. 1962년부터 2002년까지 1위는 오슨 웰스 감독의 '시민 케인'(1941)이었다. 한 언론 재벌의 일생을 빌어 20세기 매스미디어의 어둠을 갈파했던 이 영화는 2012년 왕좌에서 밀려났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이 '시민 케인'의 자리를 빼앗았다. 현대인의 강박을 서스펜스와 함께 세묘한 '현기증'이 매스미디어가 쇠약해지고 개인의 분절화된 삶이 지배하는 21세기를 좀 더 상징하는 영화이기에 더 높은 점수를 받았으리라. 최초 조사 때 4위에 이름을 올렸고 매번 10위 안에 들었던 '전함 포템킨'은 10대 영화에 뽑히지 못했다.

영화가 시대를 반영하듯 영화에 대한 평가도 당대를 반영한다. 옛 소련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혁명의 열정이 퇴락했듯 '전함 포템킨'에 쏟아졌던 갈채도 줄어드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며 오데사의 운명이 새롭게 결정된 뒤 2022년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10대 영화를 다시 발표할 때 '전함 포템킨'은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 세계 10대 영화로 다시 호명되기는 아마도 어려울 듯하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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