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어 교과서가 중1 때는 미국 유치원생 수준이다가 고교로 가면 미국 고교 수준으로 어려워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급격하게 오른 난이도를 학생들이 소화하지 못하고, 결국 사교육으로 몰리는 원인이 된다는 진단이다.
14일 이병민 서울대 교수(영어교육)가 중ㆍ고교 영어 교과서 난이도를 학년 별로 출판사 세 군데를 골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1에서 295~381L(렉사일지수)였던 수준이 고3이 되면 946~1,026L로 급증했다. 렉사일지수는 미국의 영어교육연구업체인 메타메트릭스에서 만든 영문텍스트 난이도지표다. 미국에선 1학년은 300L, 4~5학년은 645~845L, 6~8학년은 860~1,010L, 9~10학년은 960~1,110L, 11~12학년은 1,070~1,220L, 대학생은 1,300~1,400L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가 분석한 난이도는 중1의 경우 미국 유치원~1학년 수준(295~381L)이었고, 중2(501~628L), 중3(718~858L)은 미국 4~5학년 수준으로 오른다. 고1에 올라가면 또 미국의 6~8학년 수준(737~1,002L)과 맞먹는 난이도가 된다. 이어 고3이 되면 미국 고교생인 11~12학년 수준(946~1,026L)으로 어려워진다.
이 교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우리나라 영어 교과서는 학년마다 100~150L씩 난이도가 껑충 뛰어 올라 고3이 되면 미국의 고2 수준이 된다"며 "정상적인 학교 교육만 받아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선 미국의 일간지 수준의 지문이 상당수 출제된다. 이 교수가 2010년 수능 외국어영역 지문 15개를 분석해봤더니, 난이도가 1,200L 이상인 인용문이 7개로 절반이었다. USA투데이, 시카고 트리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 13개 미국 주요 신문ㆍ통신의 렉사일지수는 1,200~1,440L 정도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위해 치르는 시험에서 읽는 지문이 미국 일간지 정도라는 얘기"라며 "이 수준이 너무 높게 설정돼있어 사교육에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수준별 선택형 수능으로 치러진 지난해에는 난이도가 더 어려워졌다. 이 교수는 "하비 맨스필드 하버드대 교수가 '뉴 아틀란티스 저널' 온라인에 기고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관계를 다룬 난해한 장문의 글 중 일부를 주고 빈칸을 채우라는 B형의 35번은 내가 가르치는 대학원생들도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영어 능력과는 동 떨어진 점수만을 위한 경쟁이 돼버린 현재 수능 영어의 대안으로 그는 절대평가 전환을 주장했다. 현재 교육부는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과 함께 수능 영어의 절대평가 전환을 중ㆍ장기 과제로 검토 중이다.
이 교수는 "수능 영어를 쉽게 출제하고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하면 지금과 같은 불필요한 경쟁과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변별력이 없다는 대학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이 교수의 연구 결과는 15일 오후 한국교육개발원이 마련한 교육정책포럼 '수능 영어과목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토론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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