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의 꿈을 안고 20여년만에 장애인 보호시설을 나온 중증 장애인이 화마로 중태에 빠지자 이 장애인의 활동보조인 지원요청을 거절한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장애인 송국현(53)씨는 13일 오전 서울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성동자립센터) 생활체험홈 화재로 몸 3분의 1에 걸쳐 3도 화상을 입었다. 송씨는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된 뇌병변장애 5급에 '음'이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 3급으로 화재 당시 탈출은커녕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불길에 휩싸였다. 지난해 10월 27년간 머무른 장애인보호시설을 나온 송씨는 이곳에서 자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성동자립센터는 송씨가 중태에 빠진 책임이 활동보조인 지원을 거부한 연금공단에 있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기 위해 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에 지난해 10월 재심사를 요청했지만 종전과 같은 3급 판정을 받았다. 활동보조인은 장애 1, 2급에만 지원된다. 정동은 성동자립센터 사무국장은 "병원에서 송씨를 검진한 의사도 1급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면서 "연금공단이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등급 심사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해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이의제기를 위해 찾은 연금공단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차연대)에 따르면 송씨는 지난 10일 장차연대 회원 40여명과 재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긴급 활동보조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려고 서울 광진구 연금공단 성동ㆍ광진지사를 방문했다. 지사는 출입을 막고 1층 로비에 간이 상담실을 설치해 이의신청을 받으려고 했다.
장차연대 회원들이 "노출된 곳에서 장애인에게 몸 상태를 이야기하라는 것은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하자 공단은 송씨와 다른 장애인 한 명을 6층 장애등급심사센터에 들어가게 했다. 그러나 이들을 도울 사람은 들어가지 못했다. 남병준 장차연대 정책실장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송씨에게 조력인의 동행을 막는 것은 사실상 이의신청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이의제기와 긴급지원신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연금공단 관계자는 "2010년 9월 장차연대 회원들이 5일간 심사센터 점거 농성을 벌인 전력이 있어 정상적인 업무를 위한 조치였다"면서 "조력자를 들어가게 했지만 다른 일행들의 입장을 막자 되돌아간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장차연대는 14일 연금공단 성동ㆍ광진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씨의 사고는 연금공단이 중증장애인을 외면한 결과"라며 사죄와 긴급지원체계 개선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지사에 들어가려는 장차연대 회원 등과 경찰 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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