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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4월 15일] 이 노래가 그렇게 두려운가?

입력
2014.04.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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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다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아니, 떠오른 게 아니라 정부가 다시 논란거리로 만들고 있다. 작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은 "5·18정신이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려질 때 곡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러나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진행되자, 5월 단체들은 식을 따로 치러 반쪽짜리 추도식이 돼버렸다. 어느 짝에도 쓸모없는 '합-제창 논란'이 정치쟁점화되고 여당에서조차 보훈처를 비판하자 국회는 작년 6월 여야 합의로 '5.18 공식기념곡 지정 촉구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분란의 장본인인 보훈처장은 "조속히 매듭지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로 이 사안이 일단락되리라 여겼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 이랄까. 지난 8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기념곡지정 보류상태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보수단체 반발'을 이유로 국회결의안을 10개월째 깔아뭉개고 있다. 새누리당은 "공식기념곡이란 제도 자체가 없어서 지정이 곤란하다"며 정부 편을 들었다. '때리는 시어미와 말리는 시누이' 꼴이다. 진정 의지가 있다면, 제도는 만들면 된다. 한 마디로 옹색하고 졸렬하다. 이 곡이 그렇게 무서운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결의안까지 통과시켰는데 무슨 국민적 공감대가 더 필요하다는 건가. 정부-여당의 이런 태도는 헌법이 인정한 '광주 정신'에 대한 부정이자 도전이다. 올해 벌어진 논란에는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추가됐다. 재향군인회 등 보수 성향 69개 단체가 지난 9일 자 조선일보 등에 이 곡에 대한 기념곡지정 반대광고를 냈다. 이 곡이 북한과 연관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작년에 '문제 있는 행동'을 한 게 된다. 대북 연계성이 있는 잠정적 적성곡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었으니 말이다.

정부의 긁어 부스럼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지난 3일 열린 제주 4·3사건 첫 정부 추도식에서 추모와는 동떨어진 내용의 G20 주제곡 '아름다운 나라'가 울려 퍼져 동티가 났다. 그동안은 '잠들지 않는 남도'라는 곡이 지정곡처럼 불려 왔다. 더 황당한 것은, 국무총리가 추도식 직후인 당일 오후 국회에 나와 "4·3사건 희생자명단 재검증 필요"라고 밝힌 것이다. 오전 추도, 오후 재검토다. 유가족들 아연실색했다. 희생자명단은 이미 10여 년 전, 정부가 오랜 조사 끝에 공식 확정한 것이다. 역사적 성격과 의미가 정립된 사실에 대해 왜 흠집 내기가 계속 시도되는가. 왜 정부가 앞장서서 상처에 다시 생채기를 내고 편 가르려 하는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는 건 아닌가.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를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취임 직후 폐기되거나 흐지부지돼버렸다. 지금 그 공약을 들먹이면 물정 모르는 청맹과니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정치학 용어에 '두 국민 정책(Two nations policy)'이란 게 있다. 국민을 이념으로 양분하고 정권은 어느 한 편에 기대 '대립 동력'을 바탕으로 통치하는 걸 말한다. 독재국가에서 잘 쓰던 정책이다. 현 정부는 이런 혐의로부터 자유로운가? "대통령에게 진보정책과 보수정책은 있을 수 있지만, 진보국민과 보수국민은 없다.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국민만이 있을 뿐이다. 박정희대통령을 지지한 국민을 부인해선 안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내내, 생명위협까지 받으며 탄압당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다.

어느 뉘라서 5·18 영령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까. 살아남은 자가 조국의 민주화를 지키려다 산화한 분들께 취하는 예의가 이렇게 허접해도 되는가. 이러고서도 아이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할 수 있는가. 논란 탓인지 박 대통령의 올 5·18기념식 참석 여부를 놓고 벌써부터 수군댄다. 이런 수군댐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에 과거사 재인식을 요구하려면 우리가 먼저 역사 앞에 당당해야 한다.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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