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름할 줄 알았다. 무대에 있을 때, TV오디션프로그램에서 날카로운 분석을 던질 때 완벽주의자의 찬바람이 느껴졌다. 정작 무대 아래, 화면 밖 인상은 소탈했다. 14일 만난 보아는 가끔 연기에 대한 아쉬움 섞인 한숨을 내쉬었고, 큰 별답지 않게 소박한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아는 할리우드 데뷔작 '메이크 유어 무브'의 개봉(17일)을 앞두고 있다.
'메이크 유어 무브'는 보아의 첫 영화이자 그의 연기 데뷔작이다. 춤에 흠뻑 빠진 두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 처럼 각자의 혈연이 만든 악연을 넘어 사랑에 다가가려는 청춘의 열정에 초점을 맞췄다. 보아가 한국계 여인 아야를 연기했고, 미국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의 우승자 데릭 허프가 상대역 도니를 맡았다. 춤이라면 자신만만할 두 사람이 빚어내는 몸동작이 화려하게 스크린을 장식한다. 보아는 "서로 경쟁의식이 굉장히 강했다"고 말했다. "누군가 제 몸을 만지는 것에 익숙지 않아 적응이 필요했으나 막상 데릭과 함께 춤을 추니 화학적 결합이 잘 이뤄졌다"고 했다. "지지 않고 멋진 모습을 보이려 했기에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영화가 된 듯하다"고 덧붙였다.
보아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왜 이런 시나리오를 보냈나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을 거쳐 미국에서 꿈을 이루려는, 그리고 오빠와 우애가 돈독한 아야의 모습이 저랑 비슷해 호기심을 가졌다"고 했다(감독 듀안 에들러는 보아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댄스영화라 제가 잘할 수 있는 춤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보아는 말했다.
영화 속에선 가수로는 볼 수 없는 보아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키스와 침실 장면이 등장한다. 보아는 "카메라 앞에서 키스를 하다니…가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제 나이 또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촬영과 병행하며 일본의 타악기 타이코를 3, 4개월 배우느라 "어깨에 무리가 갈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영어 대사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영화는 2년 전 촬영했으나 개봉이 미뤄졌다. 그 사이 보아는 2부작 TV드라마 '연애를 기대해'에 출연했고 영화 '관능의 법칙'(2014)에 깜짝 카메오로 등장했다. 이정재와 호흡을 맞춘 충무로 주연 영화 '빅매치' 촬영 종료도 눈 앞에 두고 있다. 보아는 "'메이크 유어 무브'를 촬영하면서 연기의 매력을 알게 됐다"며 "이 영화가 동기 부여를 해줘 연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보아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이사다. 2000년 가수로 데뷔해 14년 활동했다. 서른이 채 안된 나이에 비해 중량감이 느껴지는 경력과 직책이다. 대중 사이에선 농담조로 '중견가수'라 불리기도 한다. 보아는 "틀린 말이 아니니 거부감이 전혀 없다"며 "20대 중견가수로서 누릴 수 있는 건 누리고 싶다"고 짐짓 여유를 부렸다. 그는 "(회사 안에) 책상도 없는 비등기 이사이나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의 잇따른 열애 소식에 자극 받은 듯 "연애를 해야 하는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이 들수록 이상형의 조건은 줄어드는데 만남의 기회마저 줄어드는 것 같다"고 나름 원인 분석도 했다.
보아는 "가수든 배우든 오래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올해 일본에서 새 앨범을 발표하고 내년 한국에서도 앨범을 내놓겠다"는, 가수로서의 계획도 공개했다. "연기는 다작을 하기보다 욕심이 나면서도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차근차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가수로선 마이클 잭슨이 롤 모델이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데 연기 쪽은 누구라 말을 못하겠어요. 영화는 즐겨보면서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생각한 적 없거든요. 더 나이 들기 전에 좋은 멜로하고 싶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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