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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해방의 아버지 링컨대통령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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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해방의 아버지 링컨대통령 피살

입력
2014.04.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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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로 촉발된 기나긴 남북전쟁은 1863년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주도권을 장악한 북군의 승리로 귀결되고 있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설로 일컬어지는 '게티즈버그 연설'을 통해 미국민을 단결시켰고 여세를 몰아 1864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듬해 4월 9일, 리치먼드 전투마저 패배한 로버트 리 남부동맹총사령관은 북군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문서를 전달하며 4년간의 남북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틀 후, 링컨대통령이 전쟁승리를 선언하며 남부인들에 대한 정책과 흑인 선거권을 언급하는 동안 유명 배우이자 열혈 남부지지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는 백악관 건물 한쪽에서 분노로 이를 갈고 있었다. 평소 링컨의 흑인정책을 혐오하던 그는 대통령을 납치해 남부군 포로들과 교환할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이날 생각을 바꿔 아예 살해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1865년 4월 14일, 연극 이 공연된 워싱턴 포드극장은 제복을 입은 군인들과 저명인사들, 그리고 화려한 의상으로 멋을 낸 부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 전쟁승리의 경이감과 안도감으로 들뜬 표정이었다. 부인 매리 여사와 함께 성조기로 치장된 2층 특별석에 올라 연극관람에 빠져든 링컨은 권총을 몸에 숨긴 부스가 호시탐탐 그의 목숨을 노릴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3막이 시작되고 경호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 낮은 자세로 발코니에 접근한 부스는 순식간에 대통령의 머리를 겨누고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밤 10시 13분, 관객들도 모를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다. 대통령 옆자리의 헨리 리스본 소령과 잠시 몸싸움을 벌이던 그는 칼을 들고 무대로 뛰어 나와 라틴어로 외쳤다. "폭군의 말로는 이런 것이다!"

총격을 받은 링컨은 급히 극장 옆 민가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9시간을 혼수상태에 빠진 후 이튿날인 4월 15일 오전 7시 결국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56세, 대통령 재임 기간은 4년 1개월이었다.

같은 시각, 범죄는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윌리엄 슈어드 국무장관은 자택에서 암살공모자 루이스 파월의 칼에 상처를 입었으며 존슨 부통령 또한 살해 대상에 올랐다. 사건 현장을 벗어난 부스와 공모자들은 워싱턴 남쪽 버지니아주의 한 농장으로 도피했지만, 뉴욕기병대에 의해 포위됐고 암살범 부스는 항복을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하다 4월 26일, 기병대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링컨 암살 사건은 역시 흉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존 F. 케네디 대통령사건과 여러모로 닮았다. 링컨은 포드극장에서 죽고 케네디는 포드가 만든 '링컨'자동차에서 사망했다는 사실과 부스는 극장에서 총을 쏜 후 창고에서 사살됐고, 케네디 암살범 오스왈드는 창고에서 저격하고 극장에서 붙잡힌 것도 공교롭다. 둘 다 흑인 우대정책을 펼쳤으며 뒤를 이은 부통령들의 이름이 모두 '존슨'이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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