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인 가정 형편 탓에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자 강도로 돌변했던 대학생이 갱생의 기회를 얻었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바라지 않을 정도로 안타까운 사연에 법원이 선처를 결정한 것이다.
A(22)씨에게 가난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나기 힘든 늪이었다. 2011년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가 한 학기 만에 입대한 A씨는 지난해 6월 제대 후에도 복학하지 못한 채 돈을 벌어야 했다. 당뇨, 갑상선 질환, 대상포진 등을 앓고 있던 아버지(55)가 지난해 12월 척추수술까지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2000년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50)도 2005년 암 수술을 받은 기초생활수급자여서 도움을 요청할 형편이 아니었다.
A씨는 낮에는 신용카드 모집, 전단지 배포, 정수기 영업 등을 하고 밤에는 나이트클럽 종업원으로 일했지만, 병원비와 생활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사채를 썼고 대출금은 순식간에 1,500만원까지 불어났다. 궁지에 몰린 A씨는 평생 후회할 길로 들어섰다.
지난 1월 30일 새벽 A씨는 털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서울 은평구의 한 편의점 앞에서 김모(38)씨가 모는 택시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A씨는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아파서 그렇습니다"라며 집에서 들고 나온 부엌칼로 김씨를 위협, 15만원을 빼앗았다.
A씨는 이틀 뒤 새벽에도 같은 장소에서 유모(43)씨가 운전하는 택시에 탄 뒤 같은 수법으로 6만원을 빼앗았다가 유씨가 거세게 달려들자 돈을 택시 와이퍼에 끼워놓고 줄행랑을 쳤다. 다음날 새벽 같은 장소에서 택시를 잡으려던 A씨는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고 잠복 중이던 경찰에 붙잡혀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A씨의 어머니는 재판 내내 법정을 찾아와 "아들을 한 번만 용서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성지호)는 A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느꼈을 충격과 공포를 고려하면 피고인의 책임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면서도 "피해 액수가 경미하고, 아버지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참작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가 저지른 범죄의 기본형량은 징역 5~45년이지만 재판부는 작량 감경(재판부 재량으로 형량을 줄여주는 것)을 적용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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