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후 큰딸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경북 칠곡 계모 임모(36)씨가 11일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애초 초동 수사 때부터 진술을 제대로 받았다면 '동생 죽인 언니'라는 누명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3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소속 진술조력인들은 "학대나 성폭력 피해 같은 트라우마를 가진 아동은 진술 내용이 주변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기 쉽다"며 "이 같은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진술을 받았다면 사건은 처음부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언니 김양에 대한 두 차례 경찰 조사는 경찰 수사관 2명에 의해 이뤄졌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이 있기는 했지만 김양의 심리 상태나 진술의 신빙성을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었다. 김양은 조사에서 일관되게 "내가 동생을 발로 차 죽었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아무 의심 없이 김양을 소년법원으로 송치했다. 김양은 조사 내내 가만 있지 못하고 회전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면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행동이 불안감의 표출이라는 사실을 알아챌만한 전문가는 없었다.
만약 범죄전문가인 진술조력인이 있었다면 우선 불안 정도를 파악하는 사전평가를 했을 것이고, 진술도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유정 대전원스톱센터 진술조력인은 "손을 만지작거린다든지 눈맞춤을 어려워한다든지 하는 불안함을 보이면 '네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꼭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않겠다' '여기는 안전한 공간'이라고 아동을 안정시켜야 제대로 된 진술이 나온다"고 말했다. 어떻게 질문하느냐도 중요하다. 김윤봉 전남원스톱센터 진술조력인은 "'네가 어떻게 때렸니' 같은 유도형 질문을 지양하고 '그날 집에 들어가서 방안에 들어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니'라는 식으로 개방형으로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대 부모와 같이 살아야 한다고 믿는 어린 아이의 본능에서 비롯된 거짓 진술이었다는 사실은 김양에 대한 기나긴 치료 끝에 겨우 밝혀졌다. 하지만 수사와 재판 일정 상 아이가 완전히 치료될 수 있는 시간여유를 갖기는 어렵고, 최소한 전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아동보호기관의 상담사조차 아이들의 어눌한 표현 뒤에 가려진 진실을 놓치기 십상이다. 울산 계모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서현이의 경우도 유치원 때 교사가 몸에 멍을 보고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지만 상담사는 '1학년 오빠가 때렸다' '공원에서 넘어져서 그랬다'는 말에 그냥 돌아갔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아이 진술을 의심한 사람은 아이를 다뤄본 경험이 많은 유치원 교사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9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면 법무부는 진술조력인을 10명정도 충원해 현재 성폭력 피해 아동과 장애인에게만 지원하던 것을 학대 아동에게도 도입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진술조력인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물론 아동보호기관 상담사와 함께 형사고발, 친권상실·제한 청구 등 피해자 지원을 진행할 수 있는 법률조력인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아동보호기관 상담사와 피해자국선변호사가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책임자로서 제 역할을 해야 김양처럼 억울한 누명을 쓸 뻔한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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